철학 속의 여자(3)


  얼마 전 여자 축구선수인 박은선 선수가 성정체성 문제에 휩싸여 뉴스거리가 되었다. ‘여자’를, 혹은 ‘남자’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해부학적 차이, 성호르몬 지수, 유전자, 성역할 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수 있으나, 실상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럽게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여자, 남자에 대한 관념 자체가 매우 불분명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역설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뿌리 깊은 고정관념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번의 테스트에서 ‘여자’라고 했음에도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의 성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는가? 그것은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고정관념을 넘어서 ‘여자’란 무엇인가, 혹은 ‘남자’란 무엇인가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자와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엄연히 다르며 그 차이는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구성론자들은 차이를 ‘차이’로 보게 하는, 혹은 무엇을 ‘여자’로 또 ‘남자’라고 이름표 붙이는 명명체계에 주목한다. 명명체계, 범주체계는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관심과 문화적 가치가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여자와 남자에 관한 생물학적 본질주의는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서양 지성사 안에서 이 본질주의를 자리 잡게 한 주범은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였다. 플라톤의 제자로, 알렉산더 대왕을 잠시 가르쳤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 집안의 후예답게 과학적 심성을 가졌고 예리한 분석과 관찰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저술을 남기고 있다.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쓸데없이 세계를 복수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플라톤의 이원적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족에 대한 플라톤의 급진적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철인왕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아내를 공유하는 것은 가족을 폐기하고 국가적 통합성을 이루기 위해서인데, 국가는 가족과 같은 동질적 단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들로 구성되고 서로 다른 능력을 상호 교환하는 집합체이므로 국가의 통일성을 그와 같이 극렬한 방식으로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철학자가 되는 일과 왕이 되는 일은 별개의 일로서 철학자가 왕이 될 필요도 없고 왕이 철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매우 합리적 생각처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아랍문화권으로 넘어갔다 이후 다시 번역, 소개되는 바람에 전기, 후기 저작에 관하여 여러 설이 있다. 중기작이라고도 하고 후기작이라고도 하는 자연과학 저술물 중에 「동물의 탄생(De Generatione Animalium)」이 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없이 많은 여자들을 자연의 굴레에 묶어놓게 되는 극미동물설(animalculism), 혹은 전성설(preformation theory)을 주장하고 있다. 후성설(epigenesis)에 반대되는 전성설은 남성의 정자 안에 이미 아주 작은 형태로 인간이 다 형성되어있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해서 어떤 것은 암컷이 되고 또 다른 어떤 것은 수컷이 되는가? 암컷과 수컷으로 분리가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것은 서로 다른 생성의 원리 때문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다. 능동적인 것, 운동하는 것은 수동적인 것, 정태적인 것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서, 운동의 최초의 동인은 수컷에 의해 나오고 암컷이 수컷의 정액에 기여하는 것은 물질 뿐이다. 수컷은 작용인(efficient cause)을 제공하고 암컷은 질료인(material cause)을 제공한다. 여성은 물질을 제공할 뿐이고 남성의 정액이 인간의 이성적 영혼의 기원이 됨으로써 인간의 수태에 있어 남성의 역할은 지대하다. 인간의 본질은 이미 남성 안에 내재되어있는 것이며 여성은 비본질이거나, 심지어는 기형의 인간으로 묘사된다. 인구의 반이 기형이거나 불완전한 존재가 되는데, 이러한 생각은 후성설이 과학적 상식으로 자리잡기까지, 그리고 현미경에 의해 남자의 정액이 자세히 관찰되기 전까지 서구에서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믿음은 쉽게 도덕적 본성의 차이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암컷은 대개 용기가 없고 충동적인 반면 수컷은 잔인하고 단순하며 교활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여자의 특성은 동정심이 많고, 쉽게 눈물을 흘리며, 질투심이 많고, 화를 잘 내고 잔소리가 심하며, 거짓말을 잘하고, 적은 양분을 섭취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경험적으로 나타나는 여자의 특성이 여자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본 것이다.

  생물학적 본질주의 논쟁은 오늘날 생물학과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다시금 여러 문제들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유전자 정보 상의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전자 정보 상에 나타나는 수없이 많은 차이들을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적 개념과 범주들로 환원할 때 우리는 어느덧 문화적 가치의 맥락 안에 들어와 있기에 여자와 남자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금 돌고 도는 순환 안에 갇히게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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