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 관한 플라톤의 두 얼굴: 진보와 보수
여자에 관한 플라톤의 두 얼굴: 진보와 보수
  • 김혜숙 교수(철학과)
  • 승인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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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은 보편적 인간을 문제 삼고 그것이 탐구하는 대상에 관한 지식 또한 보편성을 지향한다. 따라서 여성의 관점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일면 자가당착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철학적 진리는 성을 불문하고 성립한다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철학자들은 철학이 인간과 인간의 삶을 말할 때 그 인간은 보편적 인간이라기보다는 남성이라는 데에 주목했다. 많은 철학자가 인간에 관한 보편적 원리들을 열심히 정립하고는 여성과 노예와 아이는 예외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자는 온전한 의미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 독자들은 이 지점에서 책 바깥으로 쫓겨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성으로 플라톤을 한번 읽어보자. 플라톤은 여자에 관한 한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것도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진보와 보수의 두 얼굴을. 많은 남자가 여자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자신이 가진 비일관성을 잘 의식하지 못하듯 철학자들 또한 대체로 그러하다.

  모든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는 말을 했던 철학자도 있을 만큼 플라톤은 이후 서양철학의 의제 설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플라톤은 여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첫 번째 철학자이기도 하다. 플라톤 「국가론」의 큰 주제는 인간의 행복이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국가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 정의가 도대체 무엇인지가 문제가 된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적 국가에서는 하나의 유기체에서 각 부분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함으로써 활성화되듯 각 계층이 맡은 바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사람의 몸에서 머리에 해당하는 통치자 계층은 지력도 뛰어나야 하고 용맹하며 윤리의식도 높아야 한다. 이들 통치자 계층의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동등한 직능적 능력을 갖고 있으며, 남성 통치자를 위한 교육이나 여성 통치자를 위한 교육이 다를 필요가 없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그는 「국가론」 5권에서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양을 지키는 개는 암컷이나 수컷이나 사냥 그 외의 일거리에 있어서 동등한 역할을 수행한다. 수캐가 사냥하고 양 떼를 지키는 동안 암캐는 새끼를 낳고 그것을 양육하는 일 때문에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다는 이유로 개집에 머물면서 집이나 지키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통치자 중 여자나 남자나 통치하는 일에 있어서 여자가 남자와 다른 자연적 본성을 가진다는 이유로 다른 능력을 갖는다고 말할 수 없다. 생물학적 본성에 있어 남녀가 차이를 가질 수 있지만, 그 차이는 국가를 수호하는 직능 상의 차이를 함축하지 않는다. 대머리와 머리숱이 많은 사람은 생물학적 차이를 가질 수 있지만 그래서 한 사람은 제화공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제화공이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여자와 남자의 해부학적 차이, 혹은 생물학적 차이가 무엇을 참으로 함축하는지를 말하기는 오늘날에도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플라톤은 여자 수호자들과 남자 수호자들 사이에 있어 능력의 차이는 없고 다만 남자에게서는 그 능력이 강하게, 여자에게서는 약하게 나타날 뿐이라고 보았다.

  통치자 계층에서는 남녀가 동등하게 음악, 체육 교육을 받아야 하고 배우자와 자식을 공동 소유함으로써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통치자 계층의 가족이기주의가 국가적 통합과 발전에 저해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또 우수한 자식을 얻기 위해 우수한 남녀 사이의 결합을 장려하고 뛰어난 젊은 남자들은 여자와 동침할  기회와 자격을 특별하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 품종개량론자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여기서 드러나는 플라톤의 여성관은 오늘날의 진보주의자보다도 더 진보적이다.

  그런 플라톤이 후기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법률」 편에서는 보수적 태도로 선회하고 있다. 죽기 전에 마음을 바꾼 것이었을까? 「법률」에서 여자들은 남자들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한다. 여자와 남자는 교육 내용에서도 다르고, 음악도 구분되며 부모 말을 어겼을 시의 벌도 여자들에게 더 심하게 부과되어야 한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여자는 자기 마음대로 결혼할 수 없고 아버지가 배우자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다. 여자의 결혼 적령기는 16~20세이나 남자는 30~35세이다. 자유인인 경우 여자는 40이 넘어야 법정에서 증언할 수 있으며, 남편이 있는 여자는 법적 행동을 취할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보수적이고 가부장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플라톤 또한 어쩔 수 없이 자기 시대의 한계 안에 머물고 만 것이었다.

  플라톤 스스로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에 관하여, 그리고 여자와 남자의 결혼에 관하여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가 되고 말았다. 플라톤의 두 얼굴은 여자와 남성의 탄생에 관한 설명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의 두 얼굴은 종종 「국가론」에서 보이는 급진성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