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12월 결혼한 공아림씨(왼쪽), 1984년 결혼 후 2004년에 재입학한 김수연씨. 이도은 기자 doniworld@ewhain.net
▲ 작년 12월 결혼한 공아림씨 결혼 사진 제공=공아림씨
▲ 1984년 4월 결혼한 김수연씨 결혼 사진 제공=김수연씨


  “제적을 피하기 위해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채 학교를 다니던 친구도 있었지.”

  올해는 본교가 ‘금혼 학칙’을 폐지한 지 10주년 되는 해다. 본교는 2003년 2월7일 금혼 학칙을 삭제했다. 금혼 학칙 폐지 전 임신을 하거나 결혼을 한 학생은 ‘졸업 이전에 결혼한 자는 제적한다’는 학칙 제28조 7항에 따라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본지는 ‘금혼 폐지 10주년’을 맞아 금혼 학칙 폐지 전 결혼해 학업을 그만둔 후 2004년 재입학한 김수연(동양화·05년졸, 1981년 첫 입학)씨, 금혼제도가 폐지된 현재 ‘기혼 여성’으로서 본교를 다니고 있는 공아림(행정·08)씨를 2일 여의도 김씨 자택 근처에서 만났다. 이들은 25년이란 나이 차가 무색하게도 ‘결혼’이란 공통사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이화 속 ‘기혼 여성’의 과거와 현재를 이었다. 

△구설에 오를까 결혼 소식 알리지도 못해vs요즘은 학교 생활하기 어렵진 않아 

  “교수님께는 결혼이 아니라 미국으로 이민 가서 휴학한다고 말했지. 10년~20년 전(1960년대~1970년대) 선배들은 결혼해서 학업 관두는 경우가 많았지만 내가 학교 다닐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드물었거든. 괜한 구설에 오르는 게 싫었어.”(김수연)
 김수연씨는 1984년 봄에 결혼했다. 결혼 전 시부모님은 그에게 “대통령 아내도 학교 2년 다녔는데 3년 다녔으면 졸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며 퇴학 후 남편을 내조하길 바랐다. 당시 영부인인 이순자씨는 본교 의예과를 2년 정도 다니다 중퇴했다. 그는 복학하겠다는 생각으로 자퇴서가 아닌 휴학계를 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자퇴 처리됐다.

  “그 시절이 상상이 안 돼요, 선배님. 사실 전 학교 다니면서 ‘기혼 학생’에 대한 부정적 시선 때문에 불편함을 겪었던 적은 없었거든요.”(공아림)

  현재 4학년으로 재학 중인 공아림씨는 작년 12월, 사랑의 결실을 이뤘다. 오직 ‘결혼해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겨서’였다. 공씨는 2008년 태안으로 봉사 활동을 하러 가서 우연히 지금 남편을 만났다. 이후 4년간 헤어짐과 만남의 반복 끝에 그는 작년에 결혼했다. 

  본교에서 ‘기혼 학생’으로 살아가기에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 단지 ‘부럽다’는 말을 계속해서 듣는 게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공씨는 학내의 불편한 시선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간다는 거짓말까지 하며 사랑을 이룬 선배의 이야기에 “세상이 참 좋아졌네요”라고 말했다.

△절대 깨질 수 없을 것만 같던 금혼제라는 벽vs유지됐다면 폐지 움직임 일지 않았을까

  “그 때는 금혼제를 절대 ‘나’란 사람이 깰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했어. 이대에서 영원히 남을 제도라고 생각했고, 우리가 맞춰야 한다고만 느꼈지. 그런데 폐지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금혼제’란 게 너무 우스운 제도였던 거야.”(김수연)

  김씨가 학교를 다닌 1980년대 초반은 금혼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기였다. 학생 운동이 한창이어서 금혼제에 관심이 크지 않았다. 외부에서도 금혼제를 두고 결혼을 이유로 여성 인재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본교만의 교육 문화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2003년 김씨는 친구에게 금혼제가 폐지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금혼제를 이유로 학교를 그만뒀던 학생이 재입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금혼 학칙이 폐지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 공씨를 비롯한 재학생의 반응은 어떨까. 이들은 금혼제가 2000년대 들어서야 폐지됐다는 사실에 오히려 놀랍다고 한다. 학업과 일, 결혼을 동시에 해내는 ‘슈퍼우먼’이란 신조어까지 생긴 요즘, 이들에게 결혼은 자기 계발을 중단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씨는 만약 금혼제가 현재까지 유지됐다면 불합리한 제도를 바꿨을 거라고 답했다.

  “요즘은 부당한 일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에요. 지금까지 금혼제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내’가 나서 폐지를 주장했겠죠.”(공아림)

△재입학부터 대학원 진학까지vs결혼 후 달라진 건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단 사실뿐


  “학교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어. 딸아이 또래인 동급생과 나이 차를 줄여보려고 급하게 그림도 다시 그리고, 살도 빼고, 피부도 가꿨지. 20년 만에 학교로 돌아와 멋있는 선배로 보이고 싶었으니까.”(김수연)

  2003년 금혼 학칙 폐지 이후 결혼으로 제적됐던 학생의 재입학이 2005년 1학기까지 2년간 허용됐다. 이로써 52명의 학생이 다시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고 김씨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재입학 후 졸업하기까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4학년까지 재학했던 김씨는 1980년대 학교를 다닐 때보다 줄어든 졸업 학점 덕분에 15학점 정도만 이수하면 되는 상태였다. 김씨는 재입학 후 학업에 흥미를 느껴 본교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그의 동기는 그를 두고 가방끈이 길다며 부러워했다.

  “1980년대만 해도 대학원이 지금처럼 가기가 쉽지 않았어. 한 학년 당 2~3명 정도 갔으니까. 근데 난 애 다 키워 놓고 여유롭게 대학원까지 진학했으니, 성공한 거 아니겠어.”(김수연)

  공씨 역시 4학년 1학기 째인 작년 겨울 결혼했지만, 학업을 멈추지 않고 추가학기를 다니고 있다. 현재 그는 공무원을 목표로 고시 공부 중이다. 남편의 경제적 부담 탓에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공씨에게 직장을 찾길 권유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의 선택을 존중해준다. 

  “어머님이 뭐 저런 여자아이가 다 있나 싶으셨겠죠. 이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저의 길을 인정해주신답니다.”(공아림)
 이들은 끝으로 학교가 금혼학칙 폐지에서 더 나아가 기혼 여성을 위한 복지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의 의식이 변했을지라도 ‘육아’란 현실적 여건이 이들이 학교에서 마음 놓고 공부하는 데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화 알프스 유치원이 교직원에게만 자녀 입학을 허용하고 있는데 그 대상을 기혼 재학생에게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저 역시 출산 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공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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