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의 슬픈 추석

▲ 휴일이 최대 5일 이어지는 이번 추석연휴가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부담스러울 뿐이다. 설문에 응한 취업준비생의 25.9%가 추석 때 가장 듣기 싫은 말로 ‘친적 누구는 대기업 들어갔더라’는 항목을 꼽았다. 취업준비생 뿐만 아니라 일부 대학생 또한 취업에 대한 친척의 관심 때문에 추석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ayoung1405@ewhain.net


  “26살, 면접 한 번 통과하지 못한 ‘만년 백조’에요. 추석이요? 사치죠. 취업 못한 게 불효에요. 명절 때마다 친척 사이에서 위축된 부모님을 보면 마치 저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어요.”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올해 추석은 18일(수)~22일(일) 5일간 휴일이 이어져 황금연휴라고 불린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에게 황금연휴는 그림의 떡이다. 이들은 추석 전부터 ‘명절 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이 되면 으레 받게 되는 친척들의 취업에 관한 질문공세 때문이다.

  본지는 11일~12일 취업을 준비하는 본교 재·휴학생 9명과 졸업생 1명 등 10명을 대상으로 명절에도 이어지는 취업 스트레스, 고충 등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이들은 취업난이 명절까지 앗아간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학생들은 명절 때마다 친척끼리 비교하는 게 취업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여겼으며, 스펙(Specification, 구직 때 요구되는 학벌·학점·토익점수 등 평가요소)을 쌓기 위해 추석을 할애할 것이라고 했다.

  △‘이대생은 취업 잘하겠지’ … 가족 기대심에 취업준비생은 울상

  인터뷰한 학생 모두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때까지 명절을 보내지 않을 예정이었다. 특히 ‘이대생이기 때문에 취업할 때 주변 시선을 신경 쓰게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절반 이상이었다. 이들 모두 타인의 기대를 부담스러워했다. ㄱ(언론·10)씨 “명절 때마다 취업에 대해 묻는 친척들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며 “명절 내내 눈칫밥을 먹을 바에는 아예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ㄴ(영문·07)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과 5개월 째 연락을 끊고 있다. 매번 취업 실패 소식을 알리는 것이 부담됐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 대신 10월에 있을 언론사 논술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취업스터디 구성원과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ㄴ씨는 “번듯한 곳에 취직한 뒤 가족에게 연락할 예정”이라며 “졸업을 미루고 2년째 취업준비 중인데 아직 백수”라고 했다. 이어 “추석 때 가족에게 현재 나의 불안한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불확실한 장래는 취업준비생의 명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 중 7명은 자신과 다른 친척을 비교하는 집안 어른 때문에 명절을 맞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취업준비생이 느끼는 부담은 설문조사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saramin.co.kr)이 10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이 추석 때 가장 듣기 싫은 말로 ‘친척 누구는 대기업에 들어갔더라(25.9%)’를 꼽았다. 이외에도 ▲아직도 취업 못해서 놀고 있니?(16.8%) ▲취업 눈높이 좀 낮춰(5.8%) 등 취업에 관련된 말이 순위권에 올랐다.

  한국청년센터 이승호 원장은 취업준비생의 부담이 어린 시절부터 배운 경쟁심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명문대에 다닐수록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해 취업에 부담을 느낀다”며 “20대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을 뿐더러 교육을 행한 부모나 주변의 요구도 현저히 높아 취업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난 아직 스펙이 부족해’ … 명절에도 끝나지 않는 스펙전쟁

  학생들은 추석연휴를 틈타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고자 했다. 이들은 시험공부, 자격증준비 등 추석 내 목표 스펙 갖추기에 열을 쏟을 예정이었다. 학생들은 작년보다 길어진 추석연휴를 취업 준비에 시간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지연(심리·08)씨는 25일(수)에 있을 OPIc(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 컴퓨터로 진행하는 영어 말하기 시험) 시험공부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 서씨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추석을 보낼 생각에 처량하지만 스펙을 쌓으면 지금보다 취업 때 유리할 거란 생각으로 버틸 예정”이라고 했다.

  스펙 쌓기 때문에 취업준비생이 명절 포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데는 여전히 스펙이 합격 당락을 좌우하는 요인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스펙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학생 10명 중 9명이 취업 하는데 ‘스펙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중 7명의 학생은 현재 자신의 스펙이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서씨는 “서류전형에서 떨어질 때마다 스펙이 부족해서 떨어졌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이력서에 한 칸이라도 더 채우고자 영어공부를 한다”고 했다.

  취업준비생의 명절을 위협하는 취업시장에 사교육까지 등장했다. 일부 학원가에서는 추석연휴를 겨냥한 특강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면접전문학원에 다니는 ㄷ(광고홍보·10)씨는 “추석연휴 동안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단기 특강을 들을 예정”이라고 했다. 신촌에 있는 한 면접전문학원 관계자는 “추석 특강은 이미 마감”이라며 “작년에 비해 추석 특강을 신청한 학생 수가 3배가량 늘었다”고 했다.

  스펙 쌓기가 과열된 사회 분위기로 인해 전통적인 명절 문화가 사라지는데 학생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ㄹ(국제사무·09)씨는 “무조건 스펙만 갖추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스펙 무한경쟁’이 생긴 것 같다”며 “취업난으로 인해 명절마다 가족끼리 모였던 전통사회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스펙을 무한대로 높이기보다는 일정 기준을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서류전형은 지원자의 기본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다”며 “최근 스펙을 보지 않는 채용 전형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jobkorea.co.kr)가 작년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 대기업 합격자 평균 스펙은 학점 3.7점(4.5점 만점 기준), 토익 852점, 자격증 1.8개였다.

  한국청년센터 이 원장은 취업준비생의 개인적 불안함이 사회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취업준비생은 자칫 자신만 취업 준비로 불안해한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이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라며 “명절에 가족과 친밀한 유대 관계를 가져 정신적인 불안함을 해소하는 것이 실제 취업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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