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ECC B219호에서 진행된 소음측정 실험. 바로 옆 사람이 노트북을 사용할 경우 73dB의 소음이 발생한다. 김나영 기자 nayoung1405@ewhain.net

 

  ‘타다닥 타다닥’

  ㄱ(경영·10)씨는 강의실 곳곳에서 들리는 키보드 소리 때문에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강의실 내에는 노트북, 태블릿 PC 등 전자기기를 이용해 수업을 듣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ㄱ씨는 “무의식적으로 노트북을 사용하는 학생에게 키보드를 살살 두드려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지겹다”며 “노트북을 사용하는 학생이 늘면서 수업시간에 키보드 소리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고 말했다.

  강의실에서 노트북 등 전자기기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키보드 소음이 골칫덩이가 됐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강의실 내 키보드 소음 수준은 지하철 평균 소음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에 관한 의견도 분분할뿐더러 특별한 규제방안이 없어 대학가 전반이 고민에 빠졌다.

△옆자리 키보드 소음, 지하철 안 평균 소음과 비슷한 수준

  본지는 강의실에서 발생하는 키보드 소음을 알아보고자 자체 실험을 실시했다. 이번 실험은 6일 오후1시30분 ECC B217호에서 약 20분간 진행됐다. 실험 결과로 나온 수치는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소음기준표와 비교했다.

  수업 중 바로 옆 사람이 노트북을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소음은 73db 정도였다. 이는 지하철 안 평균 소음 크기인 75db과도 비슷하다. 숭실대 배명진(소리공학과) 교수는 귀를 거슬리게 하는 소리가 30~40db이라고 언급했다.

  강의실 내에서 여러 명이 키보드를 사용했을 때는 어떨까.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에서 약 10명이 키보드를 동시에 사용했을 때 나는 소리는 91db 정도다. 이 소음은 25m 떨어진 거리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같다. 즉, 10명이 노트북을 사용하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시끄러운 트럭 안에서 수업을 듣는 것과 같은 수준의 소음을 느낀다.

  키스킨(key skin, 키보드 소음을 줄이기 위한 덮개)의 사용유무에 따라 소음 정도도 차이를 보였다. 키스킨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는 73~76db, 키스킨을 사용할 경우는 50db 소음이 발생했다. 키보드 커버 사용 여부에 따라 약 20db이 차이 나는 것이다.

  이에 배 교수는 “강의실에서 발생하는 키보드 소음은 음파의 높낮이 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사람의 귀에 상당히 거슬릴 수 있는 소리”라며 “공부하는 학생들의 뇌를 자극할 수 있는 소리기 때문에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키보드 소음에 대해 학생 간 의견 갈려, 교수도 고민 중

  강의실 내 키보드 소음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 차이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키보드 소리를 소음으로 판단하는 학생들은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강의실 내 키보드 소음이 수업 집중도와 면학 분위기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이지원(광고홍보·11)씨는 “무심결에 ‘나는 괜찮지’라는 생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학생들이 내는 소음이 다른 수강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키보드 소음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학생들의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일부 학생은 노트북 사용 여부는 개인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키스킨 등 부수적인 도구로 키보드 소음을 제재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노트북을 사용하는 학생 중 키스킨을 사용하고 있는 학생은 일부에 불과했다. 키보드 소리가 시끄럽다는 다른 학생의 의견을 듣고 키보드 커버를 사용하는 이지은(유교·11)씨는 “일일이 강의내용을 필기하는 것보다 노트북으로 정리하는 게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에 노트북은 필수적인 존재”라며 “수업을 듣는 학생끼리 적절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교수도 고민에 빠졌다. 강의 내에서 학생들의 전자기기 사용 여부가 확연히 차이나서 명확하게 규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ㄴ교수(경제학과)는 4일 첫 수업에서 노트북 사용에 대해 당부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이나 규칙은 정하지 못했다. ㄴ교수는 “전자기기 사용으로 인해 면학 분위기가 흐려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를 근거로 강의 내 전자기기 사용을 규제하기에는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키보드 소음을 두고 논란인 가운데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마땅한 학칙이나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소음에 관한 법적 규제는 1990년 공장, 도로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소음, 진동으로 인한 피해를 막고자 제정된 소음진동관리법이 전부다. 하지만 이는 사회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소음규제이기 때문에 학내에서 발생한 키보드 소음을 규제하기에는 부족하다. 한국소음진동공학회 정태영 회장은 “청각적 요인이 학습 과정에 미치는 과정은 크다”며 “키보드 소음이 학생들의 학습 이해도를 현저하게 떨어뜨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노트북 소음, 국내는 아직 설왕설래 … 외국은 이미 규제 시작

  타대에서도 키보드 소음 문제가 학내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 학기,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키보드 소음 문제로 논쟁이 발생했다. 강의실 내 키보드 사용여부로 학생들 간의 의견이 충돌한 것이다. 서울대 ㄷ(심리·09)씨는 “노트북을 이용해 강의를 듣는 학생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한 학생들의 불만이 표출된 사건”이라며 “수업 중 마우스나 키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안내판을 붙이는 등 노트북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 재량으로 강의 중에 노트북 등 전자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방침을 마련했다. 고려대 홍후조 교수(교육학과)는 3년 전부터 학기 초에 필기시간 외에는 노트북 사용을 제한하고 스마트폰도 비행기 모드(데이터를 차단하고 메시지, 통화를 금지하는 모드)를 하도록 했다. 고려대 학생처 학생지원부 관계자는 “최근 강의 중 키보드 소음으로 인한 불편신고가 늘고 있는 추세”라며 “사범대를 시작으로 학내에서 수업 중 전자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바람이 불고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도 지난 학기부터 수업 중 스마트폰, 노트북 등을 사용하면 감점을 할 수 있도록 교수 재량에 맡겼다.

  한편, 해외 대학은 키보드 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늘면서 대학 자체적으로 규제를 시작했다. 미국 시카고대(The University of Chicago)에서는 2008년부터 강의실 내 와이파이 신호를 차단하고 노트북 사용을 금지했다. 또 미국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는 노트북 사용이 수업을 방해하고 학습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론화했다. 이를 통해 스탠퍼드대는 2008년부터 노트북 사용을 제한하는 등 교내 규제 방안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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