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우정 5. 자유의 공모자: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철학자의 우정 5. 자유의 공모자: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 김애령 교수(이화인문과학원)
  • 승인 201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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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그는 아주 외롭고, 내면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으며, 아주 불안해요. 그리고 저는 그의 유일한 친구예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고, 그를 돕고, 그와 함께 일을 하고, 그에게 평화와 안정을 주는 사람이에요.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그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었어요. 내가 살아가고,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를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어요. … 그이를 버릴 수는 없어요. 상당 기간 그를 떠나 있을 수는 있지만 내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고 맹세할 수는 없어요.”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8년 7월 “사랑하고 원하고 그리워하는” 그녀의 필생의 연인 올그렌에게 자신과 사르트르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결코 버릴 수 없는 이들의 관계는 당대에나 지금에나 하나의 스캔들로 알려져 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1929년 철학 교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만났다. 이 때 보부아르는 21살이었고, 사르트르는 24살이었다. 함께 시험을 준비했고 둘은 모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이제 막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된 젊은 여성 보부아르는, 평생 동안 모든 것을 나눌 동지이자 가족이자 애인이자 친구인 한 사람을 갖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이며, 두 사람의 관계가 평생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사르트르의 제안에 따라, 둘의 관계가 자유를 속박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연애, 의혹, 불안감, 강박과 같은 그 모든 것을 공개하는 ‘투명한’ 관계가 되게 하자고 약속했다. 20대에 맺어진 이 ‘젊은’ 약속은 죽는 날까지 51년간 지켜졌다.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고 함께 살지도 않았지만, 평생을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친구로 함께 했다.

  “이들의 관계는 사랑과 자유이다.” 『사르트르 평전』을 쓴 앙리 레비는 이렇게 적는다. “각자 자신을 위해 꿈꾸고, 타인을 위해 글을 쓴다. 각자 자신의 욕망에 양보하지 않고, 사랑받는 자의 욕망에도 양보하지 않는다. 따라서 절대적인 공모이다.” 각자의 자유로운 연애 관계는 애초의 약속처럼 ‘투명하게’ 공개되었고,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스캔들로 만들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일들은 두 사람 뿐 아니라 세상에도 공개되었다. 그들은 사적인 관계들을 그 치부까지도 감추거나 덮어두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사생활이라는 것은 부르주아의 위선을 감추는 도구에 불과했다. 이러한 관계의 방식은 외설적이고 도착적인 것으로 비춰졌고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이 관계가 이해되고 존중되기보다 왜곡되고 비웃음을 받은 것은,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앙리 레비는 적는다. 세상의 인습에 내놓고 저항하는 둘 만의 비밀 결사. “그들의 사랑 이야기처럼 멍청이들에 의해서 그렇게 철저하게 손상된 것도 거의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에 근거한 배타적인 결합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 온 두 사람이 서로를 믿고 지지함으로써 만들어낸 우정의 연대다. 두 사람은 모두 당대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후대에는 애정과 동시에 비판을 받는 많은 책들을 남긴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두 사람은 카페 구석에 놓인 테이블에 마주앉아 각자의 책을 썼다. 그리고 사르트르가 쓴 모든 글들을 보부아르는 읽고 평해주었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가 읽고 판단을 내려줄 때에만, 자신이 쓴 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알 수 있었다. 사르트르는 “나의 생애에서 수많은 종이를 메우게 하고, 모든 극작품을 쓰게끔 한 장본인은 바로 보부아르였다. 그녀는 내게 중요했던 단 한 명의 비평가였다”고 고백했다. 보부아르도 자신의 저서들을 가지고 있다. 여성주의의 가장 의미 있는 고전 중 하나인 『제2의 성』을 비롯해서, 수많은 소설과 에세이들을 출판했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어떤 책의 집필이 사르트르의 격려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의 글의 “첫 번째 독자”, “단 한 명의 비평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언제나 보부아르가 글을 쓰고 그녀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지지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자신의 이념과 철학을 삶에서 실천하고, 비난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굳세게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 죽은 사르트르는 화장되어 몽파르나스의 묘지에 묻혔다. 그로부터 6년 뒤, 보부아르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사르트르의 옆에 안장되었다. 배타적인 사랑이 아니라, 동화되지 않을 서로의 차이와 자유를 지지하는 동지적 우정, 그와 같은 우정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부아르는 회고록에 이런 구절을 남겼다. “우리가 단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을 때 나는 거짓말을 했다. 두 사람의 개인 사이의 조화는 결코 기정사실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끊임없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