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친구여, 친구란 없는 것이라네.” 여러 철학자들이 언급했던 이 경구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래한다. 그런데 이 경구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친구란 없는 것이라니? 그렇다면 ‘나의 친구여!’라고 부르는 그 호명은 무엇인가? 이 말 속에는 순수한 우정에의 갈망이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진정 위대하고 참된 우정은 현실에는 없다는 것이 아닐까? 『우정의 정치학』을 데리다는 이와 같은 물음들로 시작한다. 그리고 우정에 대한 이 철학적 숙고는 아마도 그 자신이 경험했던 우정의 위기와 연관될 것이다.

  예일대학교의 교수였던 폴 드 만(Paul de Man)은 11살이나 연장이지만 데리다의 친구였다. 2001년 한 강연에서 데리다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내 친구였고, 여전히 내 친구입니다.” 이것은 많은 갈등과 고민 후의 고백이다. 이어서 데리다는 어떤 우정은 죽음을 통해서, 죽음 이후에 평가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드 만은 ‘예일 비평가그룹’이라 불리던 해체주의 문학이론 학파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고향인 벨기에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고, 예일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데리다가 미국 학계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데리다의 이론을 미국에 소개했을 뿐 아니라,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예일대학교에서 매 학기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도록 객원 교수직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소개자가 아니었다. 그는 문제의식, 텍스트 독해의 방법론을 공유하면서, ‘해체’라는 무기를 나누어 쓰는 이론적 동지였다. 많은 자리에서 두 사람의 이론은 비교되었고, 공통점과 차이점이 물어졌다.

  드 만이 1984년 암으로 사망하자, 데리다는 후에 『회고록: 폴 드 만을 위하여』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세 번의 강연을 통해 그의 이론을 평가하고 죽음을 애도했다. 그것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대화하던 친구에 대한 애정어린 애도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 데리다는 드 만의 ‘감추어진 과거’와 직면해야 했다. 1987년 12월 1일자 『뉴욕 타임즈』에 실린 「나치 옹호 신문에서 발견된 예일 학자의 기고문」이라는 기사는, 나치가 벨기에를 점령하고 있던 1940년과 1942년 사이에 드 만이 나치에 부역하던 두 신문에 일련의 기사를 썼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 기사가 발표될 때,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스페인계 유대인으로 태어난 데리다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는 데리다에게 묻는다. 드 만의 과거를 알고 있었는가? 이 ‘폭로’된 사실에 대해 할 말은 없는가? 해명도, 응답도 들을 수 없는 이미 죽은 친구에게서 발견된 과거의 진실, 그에 대한 충격과 놀라움. 더불어 데리다가 직면해야 했던 것은, 드 만에게 퍼부어지는 세간의 비난과 ‘해체’ 이론에 대한 공격이었다. 드 만이 나치에 부역하여 쓴 기사는 그가 이후에 발전시킨 해체주의 이론과 일관된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전쟁 중 벨기에에서 젊은 드 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1970년대 말, 드 만이 자신의 삶의 단면을 알고 싶다면  『거짓 맹세』(1964)라는 소설을 읽어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데리다는 회고한다. 유럽에서 결혼한 사실을 감추고 미국에서 이중 결혼을 한 소설 속의 주인공은, 실제의 드 만과 닮았을 것이다. 무언가가 암시되었다. 그러나 어떤 조심스러움 때문에, 데리다는 그의 생전에 그 이야기를 더 묻지 않았다. 

  드 만의 과거에 대한 ‘폭로’이후의 충격과 놀라움을 데리다는 철학적으로 직면하려 했다. 이제는 어떤 물음에 답하지도, 자기의 과거를 정당화하지도 못할 죽은 친구를 객관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부담, 그의 과오를 납득해야 하는 과제,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야하는 책임, 그리고 그와의 차이를 선명하게 그어야 한다는 자의식. 이 모든 것이 뒤섞인 상태에서 데리다는 이 문제와 대결한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 남아서 점검하거나 증명하거나 대응할 길이 없는 누군가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 그와의 우애에 충실할 것인지 여부를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우정의 정치학』이라는 철학적 작업으로 귀결된다.

  “오! 나의 친구여, 친구란 없는 것이라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이자 친구인 플라톤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우정은 늘 같은 모습으로 신의를 지키는 가운데서만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데리다는 우호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이론적 불일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후의 친구와 대화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배반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하지만 이 배반은 신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오랜 고민이 바로 데리다가 보여주는 충실한 우정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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