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삽화,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상상력



시와 삽화,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상상력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아! 드디어 이 노래를 부르고 싶은 찬란한 생명의 계절이 우리에게 왔다. 꽃그늘 아래서 시집을 읽거나 마음 맞는 벗들이랑 나들이를 가고 싶은 이 계절에, 생명력이 번뜩이는 시와 그 시를 밝히는 등불 같은 삽화로 서로의 상상력을 교류했던 초현실주의 시인과 화가들을 소개하려 한다.

  삽화가 수록된 수많은 초현실주의 시집 가운데 특히 폴 엘뤼아르의 시집에는 폴 델보, 발렁틴 위고,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만 레이, 한스 벨머, 마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등 대다수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참여했다. 그 중 여성 초현실주의 화가인 발렁틴 위고가 삽화작업에 참여한 엘뤼아르의 시집 『동물들과 그들의 인간들 인간들과 그들의 동물들』 (1937)에 수록된 시 「동물이 웃는다」의 일부를 살펴보자. “세상은 웃는다,/ 세상은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즐겁다./ 입술이 열린다 제 날개를 펴 비상하고, 다시 착륙한다(...)// 동물 한 마리도 웃는다,/ 찡그린 얼굴에서 기쁨을 펼친다./ 지상의 모든 장소에서/ 털이 흔들린다, 양털은 춤을 추고/ 새들은 제 깃털들을 떨군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말, 암소, 암탉, 개, 고양이 등 동물을 제목으로 삼은 시들을 통해 인간과 동물과 세계간의 친밀성과 교류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인용한 시에서 세상의 웃음과 동물 한 마리의 웃음을 반복적인 모티프로 표현하고 있다. 의인화된 ‘세상’은 입술을 여닫으며 웃고, 입술은 다시 날개짓을 하는 새로 은유화된다. 새의 날개짓에 이어 동물의 털 움직임이 입술의 움직임, 즉 동물의 웃음으로 표현된다. 이를 통해 웃음은 마치 전염된 것처럼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엘뤼아르 특유의 소박하고 간결한 시어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세상의 미소 짓는 한 순간을 포착해 가시화한다. 발렁틴 위고는 이러한 시의 언어를 ‘이중이미지’라는 형상 언어로 치환하고 있다. 삽화에서 말, 토끼, 노루 등 동물의 하얀 형체들은 신비하게도 인간의 얼굴 윤곽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 이미지는 마치 네온사인처럼 한 이미지를 켜고 다른 이미지를 끔으로써 이중으로 읽을 수 있는 이미지이다. 우리가 흰 부분과 검은 부분 어디에 시선을 고정하느냐에 따라 동물들이 보이기도 하고, 두 얼굴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 두 얼굴은 입을 기준으로 해서 아래와 위 대칭으로 접힌다. 동물들의 윤곽을 통해 드러나는 얼굴은 살짝 미소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발렁틴 위고는 ‘동물들이 웃는다’를 ‘동물들이 인간을 웃게 한다’로 재해석 하고 있다. 

  한편 초현실주의 화가 만 레이의 그림을 보고 엘뤼아르가 언어로 된 ‘삽화시’를 쓴 것도 있다. “(...)힘찬 씨앗의 비상을/ 땅에 머리를 박은 말없는 나무의 비상을 안고/ 풀잎들을 불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작은 목소리로 너는 웃으리라”로 끝나는 시는 만 레이의 그림 <새-나무>의 삽화시이다. 만 레이의 그림에는 꽃이 열려야 할 마디마다 새들이 부리를 매달고 열려있다. 이러한 꽃-새는 가지에서 떨어질 때, 보통의 꽃처럼 낙화하는 것이 아니라 새처럼 날아갈 것처럼 보인다. 추락에서 상승의 꿈으로, 정지된 식물에서 날아가는 새의 꿈으로 전환하는 만 레이 그림의 전복적 이미지는 엘뤼아르의 시에서 해설되거나 그대로 번역되지 않는다. 시의 화자는 삽화 속 새-나무에게 말을 건네고 있을 뿐이다. 시인은 추락하는 꽃봉오리가 아닌 비상하는 새를 품고 있는 나무, 새의 부리를 가지에 달고 휘파람을 불고 있는 나무의 보이지 않는 꿈을 보여준다. 땅에 박혀 있고, 정지해 있는 것이 준비하는 더 큰 도약과 비상의 꿈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삽화는 언어와 형상의 공존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시와 삽화는 타장르를 상상력의 발판으로 삼아 의미와 이미지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언어와 형상의 대화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 대화는 상상력이 출발하는 지점을 응시하게 할 뿐 아니라, 언어·형상·존재의 표면 및 의식 안쪽에 있는 무의식을 이끌어 낸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 가운데 영감을 주는 한 부분을 잡아 나만의 삽화를 그려보자. 여러분의 시선을 잡아끄는 그림 한 편을 골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시로 만들어보자. 내용과 형식의 이동 그 자체가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서 출발한 내용과 형식의 이동은 나만의 상상력을 만개시켜 줄 따뜻한 햇볕, 시원한 물, 산들거리는 바람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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