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기술법과 창의적인 글쓰기



자동기술법과 창의적인 글쓰기

 

 

   하얀 백지 앞에서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 지 몰라 괴로워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또는 컴퓨터에서 새 문서를 열어놓고 십 분 이십 분 깜박거리는 커서만 계속 노려본 경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백하건데 이 글도 애꿎은 커서와의 오랜 눈싸움 끝에 시작되고 완성되었다. 리포트를 준비하는 학생에게나 전업 작가에게, 일기나 편지처럼 비교적 편한 글을 쓸 때나 논문이나 장편소설과 같은 무게의 글을 쓸 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시작하기의 어려움. 그 어려움은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 글쓰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 정해진 분량을 메워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온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고안한 대표적인 글쓰기 기법인 ‘자동기술법’은 이 모든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자동기술법은 프로이트의 연상기법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 무의식이 부르는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 적는 기법이다. 이 기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초현실주의의 수장 앙드레 브르통은 “말이건 글이건 아니면 그 어떤 수단에 의해서건 사고의 진정한 작용을 표현하려는 심리적인 자동현상, 이성의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고, 미학적이나 도덕적인 어떤 규약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고의 받아쓰기”라고 자동기술법을 정의내리고 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장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안락한 장소에 앉아서 종이와 연필을 앞에 놓고 의식에서 벗어나 수동적인 상태가 되도록 마음을 비우라. 정신이 몽롱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 그 상태에서 바로 생각나는 문장을 빠르게 적어 내려가면 된다. 내 정신에 의식적으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게 되면 자신의 무의식이 반영된 참신한 문장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1919년의 어느 날, 잠이 들려는 순간, 갑자기 내 정신 속에 떠오른 조각난 문장들, (...) 눈에 띄게 이미지가 풍부하고 구문도 완벽한 그 문장들은 내게 최상의 시적 요소들처럼 생각되었다”는 브르통의 술회가 말해주듯,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단어들과 이미지들의 자유로운 분출에서 시적인 경험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자동기술법은 기존의 시에서 중시되었던 모든 것들, 즉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까지 시인이 기울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노력, 미를 향한 열망, 사회와 인간 삶의 도덕적 질서에 대한 고민들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의식의 방향을 벗어나서 오로지 매 순간 우리의 귀에 속삭이는 언어의 물결에 실려 가도록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반수면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비의지적인 문장들에 의해 일깨워지게 되는데, 브르통에 의하면 아무리 비논리적이고 무위적이고 부조리한 것일지라도 이런 문장들이 바로 “제 1의 시적 요소들”을 이룬다는 것이다. 

  앙드레 마송이나 호안 미로, 한스 아르프와 같은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자동기술법을 스케치와 회화에 적용하는 ‘오토매틱 드로잉’을 시도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흰 종이를 앞에 놓고 눈을 감거나 눈에 안대를 두른다. 자동기술 글쓰기의 준비단계와 마찬가지로 가급적 수동적인 상태가 되도록 마음을 비운 후 준비가 되면 상하좌우 마음껏 무의식이 시키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다시 눈을 뜨고 (혹은 안대를 풀고) 그 결과를 관찰한 후 나온 형상에 따라 그림을 완성하거나 색을 입히면 된다. 이를 응용한 다른 방법으로 앙드레 마송은 캔버스의 아무 곳에나 아교를 바른 자리에 모래를 뿌린 후 다시 털어내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모래와 캔버스의 형태 위에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다.

  자동기술법의 정련되지 않은 생각이 갖는 해방의 자원들을 창의성 계발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동기술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기 보다는, 의식적인 다른 글을 쓰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 내지 도화선의 역할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스위스에서 창의적인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올리보는 자동기술법을 활용한 글쓰기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지금부터 ‘나는’이라고 쓰기 시작해서 약 10분간 쓰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써라. 손에 잡고 있는 펜을 멈추면 안 된다. 그만큼 빠르고 대범하게,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말고 쓰면 된다.” 당장이라도 즐겁게 시작해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은 쉽게 글을 시작할 수 있고 창작의 고통이나 의무에서 벗어나 즐겁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벽을 깨고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역량을 솟아나게 해준다. 방식이 창의적이어야 창의적인 내용도 나온다. 글을 쓰는 색다른 방법을 통해 더 좋은 상상력과 글감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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