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상, 낯익은 글쓰기 - 여성들의 여행기(1)

 

<편집자주> 본지는 이번 호부터 역사 속 여성들의 여행기를 다루는 이화인문과학원 김경미 HK교수의 기고 글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깃들어 있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기운을 얻기 위해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먼 곳으로 가기도 하고, 구도하는 마음으로 성지를 향하는 순례를 하기도 하고, 공무로 여행을 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로 떠나건 여행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장소와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행위이다. 여행의 기록이 사실성과 생동성을 가지는 동시에 여행자의 동경어린 혹은 편견어린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직접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행기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관계의 기록이자 문화적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여행기는 무엇보다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문화를 접하게 하면서 추체험하게 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여행을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선동’의 문학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 여행의 충실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8세기 무렵 신라의 고승 혜초가 4년간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서역을 두루 돌아보고 쓴 <왕오천축국전>이나 중세 이슬람의 대여행가 이븐 바투타가 30년에 걸쳐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여행하고 기록한 <이븐 바투타 여행기>, 조선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를 여행하고 기록한 <열하일기>는 문명에 대한 보고이자 문명 교류의 흔적이며, 그 자체 뛰어난 문학적 기록물들로 인류의 유산이다. 일찍부터 여행기가 기록되었지만 전 지구적으로 여행이 활발해진 시기는 18세기이다. ‘대항해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여행은 지구 전체로 활발해졌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주제나 양식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의 경우 17세기 이후 사대부들 사이에 산수를 유람하고 이를 그림이나 글로 남기는 일이 유행했다. 산수유기(山水遊記), 혹은 유산기(遊山記)라고 부르는 이 여행기록은 17세기 이후 여행문학의 한 전통을 이루었다. 중국과 일본으로 통신사나 사신들의 여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외국으로 여행한 기록도 많이 남아 있다. 일본으로 간 사행을 기록한 사행록과 중국 연행을 기록한 연행록들이 그것이다. 연행(燕行)이란 조선시대에 국가의 외교사절로 중국의 연경을 오가던 여행을 말하며, 연행록은 이 여행에 참가한 사신이나 수행원이 기록한 여행기이다. 명나라 때까지는 중국 황제를 배알한다는 의미에서 중국으로의 사신여행을 조천(朝天)이라는 말로 불렀고, 청나라 이후로는 북경을 연경(燕京)으로 불렀기 때문에 연행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명나라 때까지는 조천록이라 하고, 청나라 이후로 연경으로 다녀온 기록은 연행록이라 했으며, 일본으로 다녀온 것은 사행록이라 했다.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중국을 다녀온 기록이 가장 많은데 200여 편이 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연암의 <열하일기>도 연행록 중의 하나로, 노가재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와 담헌 홍대용의 <담헌연기>와 더불어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힌 연행록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 이후 조선사회에서 산수유람을 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쓰고, 사신으로 외국에 다녀와서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돌려 읽을 정도로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쓰는 것이 유행했지만 여기에 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특히 외국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양반들과 이들을 수행해 간 역관들과 하인들로 한정됐다.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물론 남성들이라고 모두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국내 여행은 외국여행에 비해서는 비교적 수월했지만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했다. 외교사절로 여러 번 중국 땅을 밟은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 선비들에게 외국 여행은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것이었다. 그래서 35살의 나이에 중국으로 여행하게 된 담헌은 평생에 한 번 중국을 보기를 원하여 매일 근력을 다지고, 역관을 만나면 중국어 음과 말을 배웠다고 한다. 이처럼 감격적인 여행을 하고 돌아온 그는 여행기를 한문과 한글로 남겼다.

삶의 동선이 규방 안으로 한정되었던 여성들에게 여행, 그것도 외국 여행은 도무지 상관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깥을 향한 지적 호기심, 바깥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없었겠는가? 몹시 산수를 유람하고 싶어 했다거나 남편의 관소에 따라갔다가 잠시 유람했으나 문제가 되었다는 기록들이 더러 나오는 것을 보면 여성들의 여행에 대한 열망을 짐작할 수 있다. 담헌이 중국 여행을 다녀와서 한글로 쓴 <을병연행록>이나 <열하일기> 한글 번역본 또한 여성에게 읽히기 위한 것으로 여성들의 여행에 대한 열망을 채워주었을 것이다. 애초에 여성들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여행기나 여행을 다녀온 남자들이 이야기하거나 보여주는 이국의 물건들로 그 지적 허기를 달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었으나 기어이 혼자 가마를 타고 구경을 가고, “여자로 태어났으니 깊이 들어앉아 문을 닫고 삼가 경전과 법도나 지키고 있어야 옳단 말인가?”라고 질문하면서 남자 옷으로 갈아입고 여행을 감행하고, 그것을 여행기로 남긴 여성들이 있었다. 앞으로 계속될 이 글은 바로 그 여성들의 여행을 따라가는 새로운 여행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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