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에서의 30년을 되돌아보다



이영애 교수(심리학과)

30년 근속 상을 받게 돼 무척 기쁘고 감개무량합니다. 1982년 3월 이화에 처음 발령받았습니다. 그때는 심리학과가 사범대학 소속이었고 정원이 50명이었죠.

30년 전에는 과 행사와 엠티에 거의 모든 학생과 교수가 참여하면서 사제지간, 그리고 교수끼리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학생들이 과, 학교 행사에 관심을 덜 두고 자신의 커리어를 계발하는 데만 힘쓰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일을 하려고 한다는 마음은 바람직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화에서 보낸 시간 동안 기쁜 적도 많았습니다. 30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연락하는 제자도 있습니다. 학창시절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저를 찾았던 타과 학생이 결혼 후에도 고맙다고 아이와 함께 찾아온 적도 있어요.

이화에서 30년을 보내는 동안 학교를 직장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항상 스스로,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30년 동안 교수로서 공부할 수 있게 해 준 학교, 수업을 잘 들어준 학생들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최선열 교수(언론정보학과)

이화에 온지 벌써 30년이나 흘렀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이화에서 좋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축복이자 특혜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키운 많은 제자들이 곳곳에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어요. 정말 뿌듯하고 영광스럽죠.

요즘 학생들이 이화의 역사와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까워요. ‘이화여대가 없었다면 과연 한국 여성이, 나아가 한국 사회가 현재의 위치에 와있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교는 그냥 흔한 대학 중 하나가 아니예요. 벅찬 역사적 사명을 수행해온 진정성있는 교육기관이지요. 교수나 학생이나 다 대단한 프라이드를 가질만하다고 생각해요.

이화에서의 30년은 우리나라 현대사 30년의 역동성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80년대 초 학보사 부주간을 할 당시 안기부에 의해 학보 배포가 중지된 적도 있었고 학생들이 민주화 투쟁에 합류하여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죠. 수업거부, 휴교 조치 등으로 학사 운영조차 힘든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90년대부터 상업문화, 대중문화가 침투하더니 이제는  대학문화라고 할 만한게 없어요.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지성보다는 취업에 대해 고민하는 현실만 부각된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복주 교수(성악과)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 어느 새 30년이 됐네요. 아직도 처음과 같은 생생한 기분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화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저는 1982년 이화에 왔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오늘은 어떤 것을 도와줄지 고민하고 학생들이 제 가르침에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어요. 잘 하는 학생들만 이끄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진정한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인이 되게끔 해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교수의 역할이었죠.

물론 어려운 일도 있었습니다. 음악대학 구조개혁이 이뤄질 때 학장직에 있었는데 학생과 학교의 입장 중간 역할을 했어야 했습니다. 현재는 음악대학으로 환원이 됐지만, 당시는 음악학부로 축소되면서 음악대학의 위상이 저하되지 않을까 우려를 많이 했어요.

현재 음악대학은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재도약해서 훌륭한 학생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감동적인 무대를 올려다보면 우리 학생들이 무대에 서 있습니다.

우리 음악대학에서 더 좋은 연주자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 교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30년간 근무하면서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사랑과 헌신. 30년간 교수직에 있으면서 느낀 저 두 단어를 학생들과, 제가 은퇴한 후에도 들어올 더 좋은 교수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홍종진 교수(한국음악과)

처음 10년 동안은 겁 없이 용기와 패기로 강의하며 보냈죠. 중반 10년은 옳고 그름에 대해 뭘 좀 안답시고 학생과 대학의 변화에 대해 비판하며 보낸 갈등의 시기였어요. 후반 10년은 학생과 학교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화해의 시기를 보냈어요.

그 동안 ‘국악과’가 ‘한국음악과’로 바뀐 것처럼 대학 캠퍼스도 변했네요. 정문의 이화교와 이화 운동장이 지금은 ECC 광장이 됐죠. ‘지나가는 기차의 꼬리를 다리 위에서 밟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을 지닌 이화교는 이화인들의 낭만이었음을 요새 학생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1982년 3월에 처음 부임했을 때 뵀던 김옥길 이사장님과 정의숙 총장님도 기억납니다. 두 분은 학생들과 같이 고사리 수련원에 내려가면 꼭 점심을 대접하셨는데 그 때 맛봤던 닭튀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5년에는 교가와 ‘이화는 빛나리’를 주제로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연주했는데 그때 두 분께서 기립박수를 하시면서 악수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 때의 기억이 지금의 절 있게 했죠.

돌이켜 보면 저는 지난 날 동안 갖고자 했고 알고자 했으며 성취하고자 했네요. 이제는 봉사하고 베풀고 배려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박영숙 교수(교육학과)

이화 식구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연구를 통한 성장의 기회를 주시고, 좋은 학생들을 만나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훌륭한 동료들을 만나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참 좋은 분들과 함께 한 지난 30년이었습니다.

이화에 있었던 저의 30년에는 변화가 참 많았습니다. 사회학 전공에서 상담심리로 또 임상심리로 전공을 넓히면서 학문적 궁금증을 추구했습니다. 소속도 의과대학, 상담센터, 교육대학원으로 여러 번 옮기면서 학문적 경계를 넓혔습니다. 의과대학에서는 임상심리전문가로서 치료진과 협진하는 경험을 배우면서 임상심리학의 초기 정립단계에서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상담센터의 책임을 맡아 우리 학생들의 심리적 갈등을 함께 고민한 경험 또한 저에게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교육대학원생들이 대부분 교육현장에서 활동하는 교사들이기 때문에 상담의 중요성을 함께 실천할 수 있었던 일들도 모두 이화인이었기 때문에 성취한 결과입니다.

이화캠퍼스에도 3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외형적 환경이 최신 건물들도 바뀐 것은 물론 학생들의 분위기도 역동적이고 활발한 새로운 도약을 향한 열정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의 이화인이 어떻게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새로운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함으로서 한국의 이화인이 아니라 세계적인 이화인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여러분들로 인해 성장한 지난 30년을 돌아보면서 거듭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총무처 이현혜 부처장

30년 근속이 제 스스로 무척 뿌듯합니다. 반면 이화와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섭섭한 생각도 듭니다. 정년이 4년밖에 남지 않은 저에게 30년 근속 상은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학생에게 내리는 예비령 같은 느낌입니다.

1980년 이화에 처음 부임했을 때 법대 행정실에서 근무했습니다. 교내에서 학생들의 피구대회가 열릴 때면 학생들과 함께 응원하곤 했죠. 그때는 관리자라는 생각 없이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학생들과 어울렸어요. 그때를 생각해보면 제가 젊었던 순간을 이화에서 보냈다는 게 신나고 행복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교직원으로서 일했지만 학생 때처럼 학교에 다닌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학생들처럼 학기를 시작하고 학기를 끝내고, 방학 후에 바로 다음 학기가 오고…….그러다 보니 30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갔죠.

이화에서 30년을 머물면서 학교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30년 동안 늘 아침에 상쾌한 마음으로 학교에 왔죠. 학생들과 함께해서 제 생각도 젊어졌고, 아름다운 이화의 캠퍼스에서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정보통신처 정화경 과장

30년 근속한 느낌을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 무척 어렵습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30년이 언제 지나갔나 하는 생각 등의 여러 감정으로 복잡하기 때문이죠.

제가 이화에서 보낸 30년은 정보통신처의 30년 역사와 같습니다. 정보통신처는 1983년 5월에 전자계산연구소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제가 정보통신처에서 보낸 지난 30년은 전 세계적으로 정보화 기술이 발전한 시기로 이화의 정보화도 이에 발맞춰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그 중에서 1994년 이화여대에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1997년 전자결재를 도입하면서 paperless환경(종이없는 환경)을 추진한 것, 2004년에 ‘포털(portal)’ 서비스를 도입하여 흩어져 있는 서비스를 하나로 모아 한 번의 로그인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구축한 것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도 정보통신처는 이화인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적시적재에 제공할 수 있도록 주력할 것입니다.

제가 이화에서 30년을 근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학교 안에서 일하는 많은 좋은 선생님들 덕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정보통신처에서 함께 일했던 많은 선생님과 오랜 친구처럼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가족처럼 즐겁게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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