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꽃놀이와 휴식을 포기한 채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20분 안에 갈 수 있는 본교 인근의 장소를 소개한다. 벚꽃놀이, 역사탐방 등을 할 수 있는 ▲서대문구 안산과 창덕궁․창경궁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절두산 순교 성지를 찾았다.


△20분 만에 봄꽃 보러가기…안산 꽃놀이, 고궁 꽃놀이

4월은 꽃의 달이다. 개나리, 벚꽃, 백목련, 옥매화 등 많은 종류의 꽃이 4월에 개화한다. 서울 시내 봄꽃 축제가 4월에 열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평지의 꽃길만 걷는 게 지루했던 사람은 굴곡이 많은 길에 바위와 꽃이 함께 어우러진 ‘안산’에 가보자. 벚꽃과 철쭉이 많은 안산은 후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후문에서 금화터널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봉원사로 올라가는 골목이 보인다. 그 골목길에서 놀이터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왼쪽 길로 올라가다 보면 안산 등산로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시험 기간 중 잠시 다녀올 수 있는 간단한 코스는 입구에서부터 무악정까지다. 무악정 코스는 왕복 약1시간이 걸린다. 무악정까지 가는 길은 완만하고 수양버들처럼 아름답게 늘어진 벚꽃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산 초입에 심어져있는 벚꽃나무를 지나면 평평한 길이 나오는데 양 옆으로 개나리와 진달래가 번갈아 나타난다. 무악정에 도착하기 전에 나오는 안산 약수터에서는 물을 마시며 땀을 식힐 수 있다.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봉수대 코스를 활용할 수도 있다. 봉수대는 안산의 정상으로, 봉수대까지 다녀오는데는 왕복 2시간이 걸린다. 무악재에서 봉수대까지의 길이 비교적 가파르기는 하지만 나무계단이 설치돼 힘들지 않게 올라 갈 수 있다. 정상에 가까워지면 철쭉과 진달래꽃이 거북바위, 말바위 등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과 어우러져 있다. 친구와 함께 특이한 바위에 이름을 붙여가며 정상까지 오르는 것도 안산 꽃길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정상 봉수대에 올라가면 인왕산 위에 수놓아진 노란 개나리길과 경복궁에 피어있는 봄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창덕궁의 목련과 창경궁의 벚꽃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고궁 꽃놀이’ 코스도 소개한다. 이대 후문에서 독립문 방향으로 가는 272번, 601번 버스를 타고 6정거장을 가면 ‘창덕궁’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면 담 너머의 녹음과 겹쳐져 봄기운이 왕성한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을 마주하게 된다.

간단한 꽃놀이 코스를 원한다면 일반 관람만으로도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을 포함하는 특별관람 코스를 제외한 길이 일반관람 코스다. 일자로 건물이 배열된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은 건물의 배치가 불규칙하다. 배치의 불규칙성 때문에 궁궐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만개한 매화꽃과 목련꽃을 찾는 재미가 있다. 창덕궁에서 벚꽃이 가장 흐드러지게 핀 곳은 ‘낙선재’다. 화려한 장식이 없는 낙선재는 궁궐에서 보기 드문 소박한 건물이다. 하지만 헌종이 왕비 간택에서 떨어진 경빈 김씨를 사랑하여 그녀를 위해 특별히 낙선재를 지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나면 낙선재의 봄꽃이 훨씬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후원 입구에 있는 ‘함양문’을 통하면 창덕궁을 나오지 않고서도 바로 창경궁으로 갈 수 있다. 창경궁은 왕이 집무를 보던 경복궁, 창덕궁과 달리 왕실의 웃어른인 정희왕후, 소혜왕후 등의 평안을 위해 지어졌기 때문에 정원이 운치 있게 조성됐다. 창경궁 담벼락의 노란 산수유꽃과 ‘경춘전’의 생강나무는 3월에 제일 먼저 개화해 창경궁의 봄을 알렸다. 원앙새는 호수 위에서 따뜻한 봄 햇살을 느끼고 있다. 동양의 아름다움을 품은 모란 역시 활짝 폈다. 고건물 뒤뜰에 심어진 앵두나무도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궁 안쪽에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대온실’이 있다. 이곳에는 앵초, 매발톱꽃 등 일반 꽃놀이에서는 보기 힘든 야생화를 볼 수 있다.


△선교사들의 슬픈 역사를 담은 양화진과 절두산

학교에서 신도림방향으로 2호선 지하철을 타면 합정역에 도착한다. 7번 출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한강공원과 마주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만난다.

묘원에는 외국인 선교사의 무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중 145기가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이 안장된 곳이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광혜원을 담당하던 선교사 헤론(Heron)이 1890년 운명을 달리하자 그의 매장지를 만들기 위해 설립됐다.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묘원 B구역에 나란히 붙어있는 아펜셀러(Appenzeller), 홀(Hall) 등 이화학당 발전에 힘썼던 5명 선교사의 무덤을 볼 수 있다. 페인(Paine)은 이화학당에 중등교육과를 설치했고, 힐만(Hillman)과 그의 가족은 종합대학교로서의 이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펜셀러는 현재 본교가 위치한 신촌캠퍼스 이전을 기획했다. 선교사들의 무덤 앞에는 ‘이화의 창설과 초석을 높으신 스승님들’이라는 제목의 기념비가 서있다. 기념비는 창립 120주년을 맞아 본교에서 제작한 것이다.

한국의 교육과 의료에 기여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과 묘비명도 볼 수 있다. 묘비명을 통해 외국 선교사들이 당시 조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미국 의료 선교사 켄드릭(Kendrick)의 묘비에는 ‘나에게 천 번의 생명이 있다 해도 나는 그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고 적혀있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운 언더우드(Underwood)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묘비명을 남겼다.

전시홀 중앙에서는 이화학당 1학년 ‘간난이’학생이 126년 전 스크랜튼(Scranton) 여사에게 쓴 편지를 볼 수 있다. 간난이 학생은 콜레라에 걸린 어머니와 자신을 치료하고, 이화학당을 세워 교육의 기회를 준 스크랜튼 여사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는 “본교는 부녀자들을 서양식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더 좋은 조선인이 되는 것을 기뻐한다”고 말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절두산 순교 성지가 위치한다. 한국 기독교의 성지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라면, 절두산 순교 성지에는 천주교 박해의 슬픔이 있다.

절두산의 본명은 가을두(加乙頭), 잠두봉(蠶頭峰)이다. 이 말은 ‘머리를 높이 든 형상’을 의미한다. 흥선대원군이 프랑스인 선교사 9명을 1866년 처형하자 로즈 제독이 프랑스 함대를 이끌고 같은 해 9, 10월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입했다. 집권자들은 외국종교와 세력에 대한 반발로 천주교를 박해했다. 흥선대원군은 양화진 절두산에서 신자 33명 이상을 처형했다.

절두산 순교 성지에서는 순교박물관 및 공원에 숨겨진 곳곳의 순교 기념물들을 볼 수 있다. 절두산 성지에서 가장 큰 기념물은 한국인 신부 ‘김대건 동상’이다. 가로수처럼 서있는 나무기둥들 가운데에는 약3m 높이의 동상이 있다. 김대건 신부는 전국 각지를 순방하면서 비밀리에 신도들을 전도했다. 김 신부는 선교사의 입국과 선교부와의 연락을 위한 비밀 항로 개설을 위해 백령도 부근을 답사하다가 체포됐다. 그는 6회에 걸친 혹독한 고문 끝에 26세에 순교했다.

‘절두산’이라는 돌로 된 안내판 위쪽의 계단 수십 개를 올라가면 한국 가톨릭 최초의 순교자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천주실의’를 비롯해 이벽․정약용 등의 유물과 순교자 유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천주교 창립과 초기 천주교도들에 대한 박해 역사를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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