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한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사회미학으로 읽는 개화기-일제강점기 서울 건축』, 임석재 지음

1890년대 말 한양 한복판에 명동성당이 처음 지어졌을 때, 사람들은 그 압도적 높이에 한 번 놀라고, 그 생경한 외관에 한 번 더 놀랐다. 조선 정부는 경복궁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 ‘무례한’ 키다리 성당이 탐탁지 않아 오랫동안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일반 사람들은 이 고딕 양식의 우아한 성당을 ‘뾰족집’이라 부르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비단 명동성당만이 아니다. 개항과 더불어 많은 서양 양식의 건물들이 서울 거리에 직수입되었고,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면서 식민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제국주의 양식의 서양 건물들이 서울 중심가를 점령하게 된다. <사회미학으로 읽는 개화기-일제강점기 서울 건축>은 바로 이러한 이질적 서양건축이 500년간 이어져온 서울의 전통건축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기의 건축 상황을 사회적, 역사적, 건축미학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는 책이다.  

정동교회, 서울성공회성당, 서울역 구청사, 한국은행 본관, 영국대사관 등 이젠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이 시기 서양식 건물들이 총망라되어 있는데, 분석의 큰 방향은 이질적 양식의 서양건축이 우리의 전통건축과 어떤 점에서 다르며, 서양 건물이 주류 건축으로 세를 확장해가면서 우리가 어떤 변화를 겪었고, 그 충격은 어떠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개화기 때 외세가 아닌 우리가 주체가 되어 지은 서양 건축물들을 ‘자주적 서양 양식’으로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일제 제국주의 양식 건축에 스며들어간 한국 전통미학의 특징들을 추적한 대목들이다. 예컨대 서재필이 세운 독립문은 파리의 개선문을 본 떠 만들었지만 조선의 성벽 돌쌓기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한국인의 전통 정서를 잘 반영한 건축물이라는 것, 일제가 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에게 지어준 운현궁 양관-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궁>의 주요 촬영지였다-은 방금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듯한 서양 빌라의 외관이지만, 넓은 흰 벽면 위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습은 한옥과 많이 닮아 있다는 등의 예리한 분석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전통건축과의 결합은 미미한 수준으로 끝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기의 건축은 서양건축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서양화의 한 과정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전면적인 서양화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의 ‘압축 근대화’와 맞물리면서 서울 전체를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들로 뒤덮는 또 다른 극단적 서양화로 이어졌다고 비판한다.

21세기 현재 서울의 건축은 여전히 ‘변신’ 중이다. 20세기의 성냥갑 아파트는 주상복합이라는 더 불건강한 형태로 퇴화(?)하고 있지만,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만한 창의적인 건축물들도 생겨나고,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전통 한옥을 다시 선호하는 트랜드도 감지되고 있다. 어쩌면 조만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전통건축의 장점이 잘 조합된 새로운 건축환경이 도래하지 않을까? 이 책의 문제제기가 그런 새로운 서울 건축의 단초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화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혜지 _ 이화여대출판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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