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결합된 미술가의 몸 - 사이보그 퍼포먼스

디지털기술이 우리 몸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주변의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 되면서 우리의 삶은 획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스마트폰처럼 모든 기능이 하나로 융합된 기기들 덕분에, 시간과 공간이 축약된 듯 우리가 동시에 많은 일을 할 수 있게된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인 우리의 몸은 과연 기술과 상관없이 순수한 유기적 존재로 남아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신체와 기술을 접합시키는 것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갖는다. 기술로 인한 인간소외를 생각하거나 기술에의 지나친 의존을 두려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에 매혹되고 더구나 기술에 의한 신체의 향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의학 분야에서는 인간의 몸속에 각종 임플란트와 칩, 인공심장, 인공관절이 사용된지 오래다. 또 신체외부에서 손으로 다루던 도구나 장치들이 아예 몸 안으로 들어와 자리 잡고, 반대로 우리가 두뇌를 통해 기억해야할 것들은 스마트폰과 USB 등 외부의 저장장치들로 옮겨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몸은 기술, 도구, 환경과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가운데 점점 더 사이보그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이보그(Cyborg)란 말은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유기체(Organism)의 합성어로, 뇌 이외의 인간 신체에 기계를 결합하여 인간의 신체적 잠재력을 확장하기 위해 만든 기계-유기체를 말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신체적 연약함을 초월해 완벽해지려는 욕망의 논리가 작용한다. 우리가 SF로 분류하는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에서는 각종 사이보그들이 등장하여 인간신체와 기술이 만난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미술에서는 상상력을 동원한 허구를 그려낸다기보다 실제로 신체에 기계가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 미술의 문맥에서 기계와 결합된 미술가의 신체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려 한다.

영국의 사이버네틱스 교수 케빈 워윅은 신경활동을 서로 자극하고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자신과 아내의 팔에 실리콘 칩으로 만든 무선응답기를 심은 적이 있다. 물론 외과적 수술이 동원되었다. 최초의 사이보그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워윅 이후, 몸 안에 칩을 넣는 퍼포먼스는 신체와 기술의 만남과 의미를 찾으려는 미술가들에게도 자주 사용되었다. 브라질 출신의 미술가 에두아르도 칵은 “예술적인 목적으로” 대중들, 기자들, 미술 애호가들 앞에서 ‘기억’이 들어있는 칩을 자신의 다리에 심었다. <타임 캡슐>이라는 이름으로 상파울로에서 행해진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벽에는 ‘기억’이 담긴 빛바랜 사진들을 붙여놓았다. 그가 의료진과 기자들에 둘러싸여 칩이 들어 있는 다리를 스캐너에 넣으면, 시카고에 있는 텔레-로보틱 손가락이 장치를 작동시켜 스캔한 몸 속 마이크로칩의 일련번호를 LCD화면에 공개한다. 그는 이 퍼포먼스에서 ‘기억’에 대해 토론했다. 유전자와 개인경험을 통해 형성된 인간고유의 특성 ‘기억’이 오늘날에는 칩 안에(혹은 위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칩의 임플란트가 “외부의 기억이 내부의 체험된 기억과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과 기계의 합성물을 통해 사이보그 퍼포먼스를 실행해 온 호주 출신 미술가 스텔락의 사이보그 퍼포먼스들을 보자.

한 예로, 그는 룩셈부르크에서 6-채널로 된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 근육자극시스템의 전선들에 연결되어 있고, 관람자들은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터치스크린 앞에 서있다. 파리의 관람자들이 터치스크린으로 조작된 신호를 인터넷을 통해 보내면, 스텔락에게 전달된 신호는 변환기에서 0~60볼트로 전환되어 센서와 자극봉에 의해 그의 특정한 근육에 전달되고, 그에 따라 그의 왼쪽 신체는 ‘비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의 비자발적인 움직임과 소리는 다시 파리에 있는 스튜디오로 전송된다. 이러한 퍼포먼스에서 인터넷은 일반적으로 말하듯이 신체의 사라짐과 자아의 해체를 촉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체를 통해 만나거나 텔레마틱한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그의 잘 알려진 로봇 팔(<제3의팔>)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체내부 복근으로부터 전달된 EMG(근전도검사기록장치)의 신호에 의해 움직이는데, 신체와 접합된 기계 사이에 있을 법한 드라마틱한 대립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스텔락 자신이 자신의 신체를 ‘비워내고’ 기계장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주인과 노예 혹은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공생하는 사이보그 시스템’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퍼포먼스들에는 분명 생물학과 실리콘 칩, 회로 사이에 놓인 긴장감이 존재하지만, 유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변증법적 종합을 통해 새로운 혼성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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