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북동, 사색의 옛길을 걷다
2. 문인의 기억, 인생 그리고 문학관
3. 이상의 집터에는 ‘날개’가 없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란 말처럼, 가을은 날씨가 서늘해 글을 가까이 하기 좋은 계절이다. 가방을 가볍게 메고 근처에 있는 문학 공간을 찾아가 보자. 본지는 ‘문학만보’를 통해 가을을 맞아 성북동, 종로구의 근현대 국문학의 산실, 사라진 문인의 집터를 되새겨본다. ‘만보’는 ‘한가로이 거닐다(漫步)’와 ‘만 가지 보물(萬寶)’이라는 뜻이 있다. 문학만보는 세 번의 기행을 통해 보물과 같은 우리 문학의 흔적을 찾아 거닌다.

 

기억이 고여 있는 혜화동 오아시스, 한무숙 문학관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나와 혜화동 로터리 방향으로 걸어가면 우체국이 보인다. 그곳에서 왼쪽 길로 가다 보면 ‘성원 지물포’에 이르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도심 속에 숨겨진 보물 한무숙 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향정(香庭) 한무숙은 ‘한국의 버지니아 울프’라고 불리는 여성 작가다. 그의 작품 「역사는 흐른다」는 격변하는 시대를 다루고 있는 초기작으로 1989년에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한무숙 문학관은 그가 40년간 산 집이기도 하다. 1993년 한무숙이 별세한 후 그의 장남인 김호기 관장이 고인의 유품을 정리해 이듬해 문학관을 열었다.

 김 관장 부부가 관리하고 있는 한무숙 문학관은 정갈하게 가꿔져 있다. 문학관은 1층은 한옥, 2~3층은 양옥으로 어우러져 있는 개량형 한옥이다. 이전의 안채와 사랑채 자리는 그 사이를 메워 전시실로 만들었다.

 전시실에는 ‘한무숙 문학관 소장 유품전’이 열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문필가이자 독특한 동양화 화법을 구사하는 화가인 천경자의 그림이 표지가 된 「역사는 흐른다」의 재판본, 1992년 버클리 대학에서 출판한 영문판 「만남」을 비롯한 한무숙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또한, 고인의 유품을 더듬어가며 생전 그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몸이 자주 아파서 서른까지 밖에 못 살 거라고 ‘서흔이’라고 불렸던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약 상자,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주고받은 친필 편지 등이 그것이다.

 한무숙 문학관 곳곳에선 그의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수필 「불씨」의 육필 원고를 통해 학창시절부터 그가 그림에 조예가 깊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부터 나는 날마다 별관에 있는 미술실에서 살았다…(중략)…어느덧 나는 학교에서 ‘그림의 한(韓)씨’라고 불리게 되었다’ 실제로 한무숙이 그린 동양화 연꽃, 해바라기, 호박 등은 그의 소설 표지에 쓰였다. 분홍색 꽃이 소담하게 핀 연꽃 그림은 그중에서도 유독 고와 「한무숙 단편집」의 표지가 됐다.

 1970년대부터 2층에 있게 된 집필실은 그가 인생의 반을 보낸 곳이다. 볕이 따뜻하게 비추는 집필실에는 그가 소설을 쓸 때 참고했을 서적들이 꽂혀 있고 주인을 잃은 붓이 붓꽂이에 걸려 있다. 이 집필실에서 「빛의 계단」,「석류나무집 이야기」,「생인손」 등의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했다.

 3층에는 한무숙의 육필 원고 및 드라마 대본, 드라마 방영 녹화 테이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고인이 생전에 그린 커다란 해바라기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노란색 해바라기 그림 뒤로는 유리 전시장이 이어진다. 특히 1942년에 써진 「등불 드는 여인」은 찢어지고 변색된 원고지를 보존 처리하여 장정(표지의 디자인을 포함해 책의 체제를 갖추고 장식하는 의장)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김 관장은 “한무숙 문학관은 전문적인 지식을 토대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지만,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순정으로 그를 기억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언덕 위에서 서시를 읊다, 윤동주 문학관

 경복궁역 버스 정류장에서 7022번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윤동주 시인의 언덕’ 정류장에 내린다. 맞은 편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 오르는 길’이 손 글씨로 써진 흰색 건물이 작년 4월에 임시로 개관한 ‘윤동주 문학관’이다.

 윤동주 문학관에는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선양회) 회원들이 모은 윤동주의 유품, 사진, 시집 등이 전시돼 있다.

 윤동주 문학관임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전시장 한쪽에 윤동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옛 땅 용정 명동촌 윤동주 생가에서 가져온 우물 목판, 동시집 ‘새명동’을 만든 등사기 등 윤동주의 어린 시절을 담은 유품들도 눈에 띈다.

 윤동주는 1917년~1945년의 짧은 생애에도 살았음에도 약123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특히 그가 1941년 11월20일에 지은 「서시」는 영인본(원본을 복제한 것)으로 문학관에 남아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  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한 곳 더 있다. 문학관 위쪽으로 이어져 있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낮은 경사의 언덕은 청운동 청운 공원의 일부다. 바람이 스치는 언덕 위에는 ‘서시’가 적힌 윤동주의 시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양지바른 자리에 세워진 시비 옆에 서면 서울 시내를 내려 볼 수 있다. 인왕산을 오르던 등산객들은 시인의 언덕에 들러 낯설지 않은 시를 가슴 속에 담는다.

 시비 뒤쪽에 있는 오솔길을 걸으면 특이한 울타리를 만날 수 있다. 울타리는 「고추밭」,「코스모스」,「길」 등의 작품이 채우고 있다. 망향대로 이어진 울타리를 따라가다 보면 시 「길」을 절로 읊조리게 된다.

 ‘잃어버렸습니다/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길게 나아갑니다…(중략)…/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망양대에 올라서면 듬직한 인왕산이 보인다. 시인의 언덕에 조성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흙 위에 놓인 대리석을 발견한다. 윤동주의 ‘영혼의 터’다. 선양회 박영우 회장은 “영혼의 터는 시인과 회원들이 윤동주의 묘로 추정되는 곳의 흙을 한 줌씩 옮겨놓은 곳”이라며 “비록 유골은 남아 있지 않지만, 윤동주의 순수한 영혼은 사람들 마음 속 깊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시」,「별 헤는 밤」 등 윤동주의 대표작이 탄생한 누상동 9번지 하숙집은 이제 자리에 없다. 윤동주 문학관만 윤동주가 걸었을 인사동, 광화문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남아있다.

 윤동주 문학관은 청운 수도 가압장 건물을 개축해 사용하고 있으며 서울시와 종로구 지원을 받아 개축하여 내년 2월 말에 새로운 모습으로 완공될 예정이다.

 

문학에 대한 한길 애정의 보금자리, 영인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맞은편 정류장에서 1020번 버스를 타고 벽산평창힐스아파트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건너 내리막길을 3분 정도 걸으면 ‘영인문학관’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써져 있는 골목을 10분정도 오르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왼쪽 갈림길로 들어서 걸어가면 ‘영인 문학관’이 보인다.

 영인 문학관은 이어령 명예석좌교수(이화학술원)와 부인 강인숙 관장이 4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2001년에 세운 문학관이다. 2001년 104명의 문인을 그린 초상화를 전시한 ‘문인 초상화 104인전’을 시작으로 영인 문학관은 매해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기획 전시전을 열어왔다.

 제27회 전시회인 ‘자작 삽화 특별전’은 29일(토)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천경자, 손소희, 이성자, 김병종 등 작가가 자신의 글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자작삽화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제1전시실에 들어서면 천경자의 삽화가 초출 원고와 가지런히 정리돼 벽에 걸려 있다. 그 중 꽃을 머리에 쓴 것처럼 온 머리카락이 꽃으로 덮인 여자가 따뜻한 시선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천경자가 쓴 「성처녀의 유행가와 여름 한복」의 삽화 중 하나다. 삽화 옆에는 ‘내 이름은 천옥자가 아니라 창씨해서…(중략)…경자라는 이름은 센티멘탈 했던 소녀취미로 스스로 지어 붙인 이름이다’며 천경자라는 필명을 지은 이유가 적혀 있다.

 ‘천경자의 방’으로 꾸며진 제1전시실에는 천경자가 1976년~1978년 「문학사상」에 연재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초출 원고와 삽화 약50점이 전시됐다. 진열장에는 약40명의 남자 작가 유품이 채우고 있다. 춘원(春園) 이광수의 명함, 고(苦) 미당(未堂) 서정주의 파이프 등이 눈에 띈다.

 제2전시실은 손소희, 이성자, 김병종 등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과 그림으로 채워졌다.

 김동리(본명 김시종)의 부인 손소희는 성격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다. 1979년~1981년 그가 「문학사상」에 연재한 「한국문단인간사」의 육필원고와 삽화 약50점이 전시됐다. ‘최정희 선생의 속성은 장미과일까, 진달래과일까’라는 글귀가 적힌 삽화는 푸른색의 장미와 진달래가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산뜻하게 그려져있다.

 손소희 코너를 지나면 이성자의 목판화를 볼 수 있다. 이성자의 ‘시조와 시화전’에는 10점의 작품이 출품되어 있다. 「시조」는 황진이가 쓴 시 ‘청산리 벽계수야…’와 이조년의 작품 등에 작가가 삽화를 그려 넣어 목판화로 새긴 것이다. 화려한 색감으로 눈을 사로잡는 김종병의 「라틴 화첩 기행」 3편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탱고를 추고 있는 남녀를 묘사한 작품 「부에노스아이레스 미켈란젤로 탱고극장에서」는 금방이라도 그림 속 남녀가 색색의 옷을 팔랑 이며 경쾌하게 춤을 출 것만 같다. 세 명의 작가 외에도 청전(靑田) 이상범 등 여러 작가의 자작 삽화를 볼 수 있다.

 강 관장은 “글과 삽화의 관계가 밀착되었지만 어떤 때는 시와 그림이 따로 놀 때가 있다”며 “이번 전시는 글과 그림의 내용이 상호 삼투하는 진정한 글과 그림의 만남을 탐색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바라본 서쪽 하늘이 잊혀지지 않는다. 장밋빛으로 고요한 하늘이었다. 정(靜)의 빛이라고 느꼈다.’

 한무숙의 「그대로의 잠을」의 한 부분이다. 고요한 빛이 내리는 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문학관으로 가자.

 

 

한무숙 문학관

매주 월요일~토요일 오전10시~오후5시(정오~오후1시 점심시간 제외)에 개방한다. 일요일과 법정 공휴일에는 휴관하며 방문을 원하는 사람은 하루 전에 문의 번호로 연락하면 된다. 11월20일까지 한무숙 단편 소설을 읽고 쓴 독후감 대회도 연다.(문의: 02-762-3093)

윤동주 문학관

개방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방문을 원하는 사람은 문의 번호로 연락한 후 방문 예약 하면 된다. (문의: 02-765-0703)

영인 문학관

매주 월요일~금요일 오전10시30분~오후5시에 개방하며 토요일, 일요일은 휴관이다. 특별 전시 기간은 4월~5월, 9월~10월에 진행되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작삽화 특별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2시에 강연회가 열린다. (문의: 02-379-3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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