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사연구소 주최 국제학술대회‘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 지구사로’…국내외 학자들 참석해 열띤 논쟁 벌여


지구사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구사는 유럽중심주의적 인식과 기존의 역사 서술을 거부하고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인간과 자연, 환경을 이해하는 학문 분야다.

지구사연구소는 4월23일(금)~24일(토) 이화·SK텔레콤관 컨벤션홀에서‘유럽중심주의를 넘어 지구사로(Global History beyond Eurocentrism)’를 주제로 제2회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지구사연구소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12월1일(월) 발족됐다.

이번 대회에는‘거대사(Big History·인류의 역사를 빅뱅에서 시작해 우주와 지구의 탄생, 생물과 인류의 출현, 그 과정에서 발생한 상호작용까지로 확대한 폭넓은 역사 연구)’의 창시자이며 지구사연구소의 초빙석학인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Cristian) 교수를 비롯해‘새로운 세계사’논의를 주도하고 있으며‘세계사학보(Journal of World History)’의 편집장인 제리 벤틀리(Jerry Bentley) 교수, 역사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이며 역사해석에서 특정 집단중심주의문제에 대한 업적을 내고 있는 외른 뤼젠(Jorn Rusen) 교수 등 국내외 학자들이 참석해 지구사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지구사연구소 조지형 소장은“이 자리를 통해 유럽중심주의의 논리구조를 반성적으로 성찰해 보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지구사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중심주의, 한국의 태도, 유럽중심주의 분류, 집단중심주의…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선 지구사의 가능성

대회에서는 지구사에 대한 유럽중심주의적 해석에 대한 비판과 해결책에 대한 강연자들의 논쟁이 펼쳐졌다.

서강대 강정인 교수(정치학과)는 지구사의 유럽중심주의적 해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중심과 주변’이라는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중심을 해체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며“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전지구적 차원에서 여러 개의 중심을 설정하는‘다중심적인 다문화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옥경 교수(사학과)는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의 상황을 지구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한국의 태도에서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백 교수는“당시의 역술서에는 서양 강국이 동양에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한국은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며“이는 무비판적으로 서양 중심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적으로 변용하고 적용하려는 시도가 여러 방향으로 이뤄졌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 하와이대 제리 벤틀리 교수(역사학과)는 유럽중심주의를 3가지 범주로 분류하기도 했다. 벤틀리 교수는 유럽중심주의를 단순한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적 유럽중심주의, 구조적 유럽중심주의로 구분하고 각각의 논리를 분석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유럽중심주의적 해석에 대한 낙관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벤틀리 교수는“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이외의 방대한 지역을 연구하는 작업이 이뤄졌다”며“유럽의 발전을 민족국가나 지역단위가 아닌 대륙, 대양, 전지구적 맥락에서 분석한 연구가 축적됐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탈유럽중심주의적 지구사 서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독일 에센대 문화과학연구소 외른 뤼젠 교수와 전 미국 오리건대 아리프 딜릭 교수(역사학과·인류학과)는 유럽중심주의적 해석에 대한 해결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뤼젠 교수는“집단중심주의는 자민족의 과거 사건을 특권화하고 타민족에 대한 차별을 포함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며“모든 종류의 중심주의는 자민족, 종족중심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중심주의로 대체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딜릭 교수도“유럽중심주의는 단순히 유럽에 중심이 있고, 주변의 다른 지역이 주변부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서구중심주의가 주변부의 생활에 내재된 것이기 때문에 탈중심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며“유럽중심주의가 확산된 원인이 식민지 지배라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말했다.

△거대사, 대안적 모더니티, 보편적 가치…새로운 지구사적 개념

유럽중심주의적 해석을 탈피하고 지구사를 새롭게 쓰기 위해 강연자들은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기도 했다.

기조발제를 한 호주 맥콰리대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사학과)는 유럽중심주의를 유럽 특정 지역, 정체성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서술하는 등 매우 편협하고 제한적인 종족 중심의 역사서술이라고 정의하며 인류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했다.

그는“역사를 시계로 보았을 때 인류가 등장한 것은 11시45분 정도에 불과하다”며“역사의 시간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면 인류전체에 해당하는 역사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인류의 기준을 단순히 한 민족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류라는 공동체로 확장하면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리프 딜릭 교수는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대안적인 모더니티(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를 단순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딜릭 교수는“유럽중심주의가 형성될 때 유럽이 왜 중심이 됐는지, 당시의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며“이를 토대로 대안적인 모더니티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구사연구소 김용우 연구교수는 지구사에 도입할 수 있는 공통적, 보편적 가치가 정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더라도 유럽중심주의가 제기했던 보편적 가치는 보존해야 한다”며“예를 들어 프랑스혁명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생성했으나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이티의 노예혁명을 통해 자유와 평등의 의미를 한 차원 더 확장한 것처럼 지구사에도 이와 같은 보편적 가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지구적 인간 공동체는 유럽중심주의를 비롯해 다양한 이유로 은폐되었던 보편적인 것들의 역사를 발굴할 수 있게 해준다”며 역사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지구사연구소 조지형 소장은 지구사에 대해“유럽중심주의는 역사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에 이르기까지 편재해있다”며“때문에 치열한 비판을 통해 유럽중심주의를 넘어 지구사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시각을 길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앞으로 국제 학술대회를 통해 글로벌 코리아에 걸맞는 역사적 관점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민 기자 hanmin@ewhain.net
사진: 배유수 기자 baeyoosu@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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