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도너 감독의 영화 「타임라인(2003)」에서는 고고학자 존스톤 교수의 유적 발굴을 후원하는 회사는 우연히 타임머신을 만든다. 타임머신을 만든 ITC의 도이거 박사는 타임머신이 어느 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메라를 이용해 그 당시 하늘을 촬영하고, 별의 위치를 계산해 그 시대의 연도를 추측한다.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물리학과)가 펴낸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김영사,2002)는 영화 「타임라인」과 같이 역사서에 남아 있는 천문자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하늘을 추측해, 역사서 속 관측의 진실성을 파악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3, 4세기 이전 기록의 25%가 자연현상에 관한 기록일 정도로 2천년 간의 기록이 방대하다. 그러나 자연현상 기록 자료들은 국내 사학계와 과학계의 주목을 끌지 못해 오랫동안 그에 관한 연구가 없었다. 오히려 일본 학자들이 「삼국사기」 천문 기록에 관심을 가져, 그들의 연구 결과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다. 1900년대 일본 학자들은 “행성의 운동을 계산해본 결과 「삼국사기」의 천문 현상 기록들은 위조됐거나 중국의 기록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삼국사기」의 삼국시대 초기 부분이 조작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저자는 천문학자로서의 책임감으로 일본 학계의 주장을 검증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삼국사기」에만 있고 다른 나라 사서에는 없는 천문 현상을 가려냈다. 만약 독자적인 기록들이 있다면, 그 사서는 실제로 일어난 국가의 역사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가정했다.

그는 「신라본기」와 「백제본기」에 동시에 나오는 서기205년 7월의 ‘태백범월(太白犯月):달이 금성에 접근한다’라는 기록이 중국의 사서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저자는 달과 금성의 운동을 컴퓨터로 역추적해 계산했다. 그리고 서기 205년9월4일 오후4시경 달이 금성과 2.1도까지, 해질녘에는 2.5도 정도 가까워지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신라와 백제가 서기205년에 기록한 관측자료가 사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백제와 신라가 적어도 서기205년부터 행성과 달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관측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삼국사기」에서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의 시점은 350여년 전부터’의 자료라는 학계의 주장을 150여년 앞당겨졌다. 이 외에도 저자는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는 달과 행성 접근 기록 상당수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일본 천문학자들의 ‘행성과 달의 접근 현상에 대한 「삼국사기」의 관측기록이 대부분 잘못됐다’는 주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해가 떠 있을 때 달이 행성에 근접하면 측정이 불가해 잘못 기록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일식 자료도 분석했다. 그 결과 신라 초에는 남쪽으로 지나가는 일식이, 고구려에는 북쪽으로 지나가는 일식이, 백제에는 그 사이로 지나가는 일식들이 주로 기록돼 있었다. 저자는 확률 계산을 통해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은 독자적으로 관측해 나온 자료라고 결론지었다.

저자는 우리 역사의 진위 여부를 연구하고 ‘일본의 옛 기록은 어떠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서기 950년까지 일본의 고대 사서에 등장하는 216개의 일식 기록 중 76개만이 일본에서 관측 가능한 기록들이다. 검증 결과, 이 중 35% 만이 사실이었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신라와 당의 일식 예측 정확도가 각각 90%, 77%인 점과 비교해 일본의 일식 기록은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연구결과는 기존 역사와 상충돼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그는 시종일관 과학적 자료만을 이용해 연구의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나라의 천문 자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감하고 싶다”는 이 책을 통해 과학적으로 규명된 우리 역사의 자긍심을 한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정이슬 기자 iseul1114@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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