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길이만으로 그 사람이 바람둥이인지 알 수 있을까?

18세기의 모험가이자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는 유럽 여행 중 신고전주의 화가 안톤 라파엘 멩스의 그림을 접했다. 멩스가 그린 그림 속의 주인공은 약지가 검지보다 짧게 그려져 있었는데 카사노바의 손가락은 약지가 검지보다 눈에 띄게 길었다. 카사노바는 그림 속 주인공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가락과 다르게 그려졌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멩스의 하인들을 불러내어 누구의 손가락이 일반적인지 내기를 했고 카사노바의 손가락 패턴이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남성에게 더 흔히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체생물학 연구 학자 중 손가락 연구의 선구자인 존 T. 매닝이 펴낸 ‘핑거북-나를 말하는 손가락’에 담긴 일화다. 매닝은 검지와 약지의 길이 비율을 통해 사람들의 경향을 파악했다. 약지가 검지보다 길면 남성형에, 검지가 약지보다 길면 여성형에 가깝다. 카사노바는 남성형 손가락이다.

저자는 책에서 손가락 비율이 특정한 경향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수십명 이상의 표본을 모집하고, 검지와 약지의 상관관계에 관한 가설과 비교한다. 그 다음 가설을 과학적 이론으로 정립한다. 그는 ‘확실하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특징을 알아내는 것이다.

손가락 비율이 의미를 가지는 과학적인 근거는 검지와 약지의 길이가 출생 전 태내에서 받은 호르몬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발육 단계에 있는 56명의 태아를 조사한 결과, 손가락의 길이가 발육 초기에 확립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태아는 7주쯤 어른과 같은 비율의 손가락이 형성되는데 약지는 테스토스테론, 검지는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다.

손가락 비율을 알면 성인병의 발생 시기도 예측할 수 있다. 매닝은 영국 리버풀대 남녀 각 1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병력 측정’ 시험도 특정한 경향을 보였다. 오른손 손가락 비율이 남성형이면 풍진, 수두, 무좀 등 감염 확률이 더 높고 여성형이면 아토피성 질환에 더 많이 감염됐다. 인간의 질병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손가락을 통해 제시된 것이다.

오른손과 왼손의 비율이 비슷해 보여도 남성은 오른손의 손가락 비율이 왼손의 손가락 비율보다 낮을 확률이 크다. 이는 성별 간에 묘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검지에 비해 약지가 유별나게 긴 남성은 매우 경쟁적이다. 반대로 검지가 긴 여성은 태내에서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부드러운 성향을 보인다. 왼손잡이, 오른손잡이, 언어의 유창성, 시공간 지각 능력 등이 모두 손가락 비율과 관계가 있다.

 매닝은 “영장류가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테스토스테론에 대한 반응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손가락이 인간의 진화와도 연관이 있으며 검지보다 약지가 더 짧은 여성형 손가락이 진화의 단계라는 설명이다.

몇몇 국가를 조사한 결과 경제적 우위에 있는 그룹은 빈곤층 그룹에 비해 여성형 손가락 비율이 높았다. 유럽인은 여성형, 동아시아나 아프리카 흑인은 남성형 손가락 비율로 나타났다. 테스토스테론 민감도를 따지면 유럽인이 가장 진화한 셈이다.

 “두 번째 손가락과 네 번째 손가락 길이 비율을 보면 누가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릴지 알 수 있다”는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 논문 내용도 손가락 비율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손가락 화석’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지만 손금 보듯 손가락 비율을 들여다보면 재미와 신선함이 더해질 것이다.

 황윤정 기자 gugu0518@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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