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병원 응급실 찾는 환자 하루 약 200명… “몸은 힘들지만 보람 느껴 일 포기 안 해”

이대목동병원은 국내 유일의 여자대학병원이다. 여성이 주도해 환자를 진단하고, 병원을 꾸려 나간다. 이 병원의 작은 응급실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가 하루에도 140명~300명씩 다녀간다. 여성 전공의(레지던트)들의 숨 가쁜 삶도 이곳에서 펼쳐진다. 2월 17일(화), 21일(토) 이틀 간 응급실에서 환자와 우리 학교 출신 여성 레지던트들을 만나봤다.

아침 9시, 응급실에 들어서자 목청이 찢어질 듯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마의 상처를 꿰매는 게 못 견디게 아픈 모양이다. 그 옆에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 부상으로 코피를 흘리는 아저씨, 울음을 터뜨리는 가족들이 보인다. 응급실은 쉴 새 없이 실려 오는 환자, 치료 받는 사람들 그리고 보호자들로 북적인다.

몇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응급실 한 켠에서 또 한 번 비명이 터졌다. 이번엔 트럭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인부다. 뼈가 비스듬한 모양으로 부러졌다. 이런 경우에는 환자의 팔을 일자로 최대한 당긴 다음, 직각으로 구부려 붕대를 감아야 한다. 레지던트 4년차 김고은(의학·01년 졸)씨는 온 몸을 동원해 환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무리 당겨도 팔은 자꾸 굽어지기만 한다. 이를 악 문 김씨의 팔도 힘에 부쳐 떨린다.

가슴이 아프다는 할머니에게는 코에 튜브를 집어넣어 폐까지 밀어넣었다. 공기펌프를 연결하니 거무스름한 액체가 폐에서부터 올라온다. 할머니가 아프다며 얼굴을 찌푸린다. “아구구구…” 신음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여의사들은 할머니의 가래를 능숙하게 뽑아낸다. 튜브를 움켜쥐려던 할머니의 손은 다른 여의사들에게 붙잡혔다.

다른 병원들은 여자는 힘이 약해 응급의학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기 일쑤다. 그러나 여성 응급의들은 물리적인 불리함을 제외하곤 이 일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말한다. 레지던트 4년차 김보인(의학·01년 졸)씨는 “응급의는 일할 때는 바쁘지만, 장기적으로 전담하는 환자가 없다보니 쉬는 시간을 확실히 갖게 된다”며 “다른 과에 비해 가사·육아를 부담해야 하는 여성에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대학병원이라 해서 여성에게 편한 환경인 것은 아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의 출산 휴가는 8주로, 타 병원에 비해 4주 정도 짧다. 정구영 교수(의학 전공)는 “의학적으로는 분만 후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6주로 본다”며 “여자대학병원이니 여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여성 인력이 대부분이라 오랫동안 쉬게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레지던트 4년차 이재희(의학·00년 졸)씨는 “여자대학병원이라 해도 실상은 여성인권의 사각지대”라고 토로했다. 격일로 밤을 새는 일이나 짧은 출산 휴가보다 더 힘든 건 가정과 일을 동시에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씨는 레지던트 2년차를 마치면서 같은 학년 레지던트와 결혼했다. 그는 시어머니께 6개월 된 아이의 양육을 맡긴 상태다. “일과 가사에 육아까지 맡느라 생활은 점점 바빠지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요.” 그가 아는 상당수 여성 레지던트는 일, 가사, 육아에 대학원까지 다니며 학위를 취득하기도 한다. 늘 소화하기 힘든 양의 일을 해내느라 쉴 틈 없이 바쁘다.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다. 남편도 자신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 왜 자신은 항상 더 많은 일을 떠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이씨는 “힘들지만 ‘안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아요. 이곳도 계급사회니까요”라고 말했다.

아이를 둔 전공의들은 오히려 “본교 병원 응급실은 출산을 장려하는 분위기라 그나마 낫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남성의사가 많은 병원이나 여성의 출산휴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과에서는 눈치가 보여 아이를 갖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응급실에선 여의사들이 만삭이 되도록 일을 하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경우가 흔하다. 재작년 의국장이었던 최윤희(의학·00년 졸)씨는 출산예정일까지 일하다 진통이 왔다. 그는 즉시 위층의 산부인과로 올라가 아이를 낳았다. 작년에 출산한 이재희씨도, 세 명의 자녀를 둔 강현주(의학·97년 졸)씨도 만삭이 될 때까지 일했다. “부른 배로 어떻게 일을 하냐고요? 선배들도 저도 모두 그렇게 해온 걸요.”

응급의학만의 매력과 보람이 있어 그들은 결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레지던트 3년차 김유라(의학·01년 졸)씨는 “몸이 힘들긴 하지만 응급의학과에 온 걸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응급의는 환자를 처음 만나 응급조치한 후 다른 과로 보내거나 퇴원시키는 일을 한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도 만날 수 있다. 약물 중독자부터 노부부까지, 응급실을 거쳐 간 환자들을 회상하며 김씨는 웃어보였다. “다양한 증상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나는 건 응급의학과만의 매력이죠.”

응급의학만의 특별한 점으로 이재희씨는 ‘바이탈(생체징후)을 다뤄 사람을 살려낸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응급의학에 스페셜티(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가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응급의들은 자신의 분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응급실 일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루기 어려운 환자를 만날 때면 의사도 종종 답답해진다.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온 고등학생은 뇌출혈에 대퇴골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이 옷을 벗기자 그는 화를 내며 발버둥을 쳤다. 집에서 혼절해 실려 온 할머니는 바이탈(생체징후)를 살펴봐도 병명을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이런 경우에는 환자에게 평소 복용하는 약이나 지병 등에 대해 물어봐야 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 이씨는 “진료하다보면 환자들이 의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유라씨는 “중풍을 앓은 후 우울증에 걸린 할아버지, 집안 문제로 고심하다 응급실에 실려 와서 하소연하는 아주머니 등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며 “의사라면 몸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응급의의 중요한 의무”라고 말했다. 응급의는 아무리 궂은 손님이 와도 친절히 대하고 회복시켜 보내야 한다. 응급실은 그렇게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보살피는 곳이 된다. 응급의가 보람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다.

김보인씨는 “응급의 중 나갔다 돌아온 사람은 있었어도, 그만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나 또한 내가 하는 일에 후회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quikson@ewhain.net
사진: 고민성 기자 minsgo@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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