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대한 압박감·학교의 지원 미비로 문학도 수 줄어···

“교보빌딩, 빠른 등기로 부쳐주세요!”
10일(월) 오후5시50분 류현정(국문·07)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생활관 우체국 안을 가득 메운다. 류씨가 내민 우편물은 두꺼운 서류봉투 두 봉. 제7회 대산대학문학상에 응모하는 류씨와 이진송(국문·07)씨의 작품이다.
“막 뛰어갔죠. 우체국 문이 닫힐까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남들은 빼빼로 데이다 뭐다해서 즐거운데, 저는 다 부치고 나서도 가슴이 쿵쾅대는 게, 딱 주저앉고 싶었다니까요.”
류씨가 제출한 소설은 2년을 가까이 퇴고한 작품이었다. 다른 문우들이 여러 편을 훌쩍 써 넘길 때, 류씨는 한 원고를 붙잡고 놓을 수가 없었다. 써넣을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화 안에서 때때로 보이는 밝지만은 않은 소재들이, 제 소설을 자꾸만 다시 시작하게 했어요.”
백목련 지는 비탈잔디부터, 눈 내리는 중앙도서관 앞길에 이르기까지. 사계절을 수첩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적었다. 교수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불신·학교와 학생회의 충돌 등 이화의 많은 일들이 류씨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했다.
“다른 대학에서 문학을 했다면 어땠을지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이화에서 문청(문학청년)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는 거예요.”
류씨는 자신을 문청(文靑)이라고 표현했다. 이 시대, 우리 학교에서 순수문학을 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이화의 문청’을 만나 그 속내를 들어봤다.

△이화 안에서 성장하는 문청
이진송(국문·07)씨는 대학 입학 후 자신의 소설이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주체적 글쓰기화’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성들과 함께 있으면 존재 자체가 타자화 되는 느낌이에요. 저는 이화인이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의 사고가 가능해졌고, 온전히 주체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이씨는 무엇보다도 우리 학교의 학풍을 사랑한다. 방법론적인 ‘기술’보다도 인문학적인 ‘사유’를 통해 깊이 있는 글쓰기를 배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가 이처럼 성장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학년 때였어요. 한 교수님께서 ‘이화에서의 공부가 네 감성을 헤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쪽지를 보내주셨는데, 그게 참 충격이었어요.”
학문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창작에 꼭 필요한 감성을 간직하기 위해 이씨는 나름의 작전을 세웠다. 매일 A4 2∼3장 분량을 습작하고 일기를 썼다. 2년간 단편소설 5편을 완성했고 국문과·철학과 수업의 과제도 최대한 창의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얼마 전에는 창작캠프에 다녀오기도 했다.
“쉽지만은 않죠.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니까 끝까지 해보려고요.”

△이화의 문청이 나아갈 길
2007년 문학특기자로 입학한 신주희(국문·07)씨는 문학창작 뿐만 아니라 영화·마케팅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실제로 교내 영화동아리 ‘누에’ 활동뿐만 아니라 각종 기업에서 대학생 마케터 활동을 하기도 했다. 신씨는 “왜곡된 포장으로 인해 좋은 작품이 평가 절하되는 경우가 많다”며 “마케팅 공부는 그런 면에서 창작 아닌 다른 방법으로 내가 예술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류현정씨 또한 “순수문학과 경제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타 분야를 병행해나갈 생각”이라며 “제일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반면 자신의 삶에 있어 창작을 우선순위 1순위에 두는 사람도 있다. 시를 쓰는 송섬별(영문·05)씨다. 송씨는 “진정한 시쓰기란 나의 몸 속 욕망의 지도를 새로 그리는 것”이라며 “굶지만 않고 시를 쓸 수 있다면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대학시절 시인과 생활인으로서의 입장이 상충되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시쓰기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각종 문학상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송씨는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작하는 대학생에 학교의 지원 필요해
우리 학교는 시인 진은영·정끝별, 소설가 권지예·정미경 등 수많은 문인을 배출해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학교 출신 등단자를 찾아보기는 어려워졌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각종 교내·외 문학공모전 참여도 저조해진 실정이다.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이대학보사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이화글빛문학상’의 제1회 응모작은 2편에, 제2회 응모작은 1편에 그쳤다.
학생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학교의 미비한 지원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주희씨는 “과제와 시험의 연속선상에서 창작보다는 학점 위주의 삶을 살게 된다”며 “문학특기생에 대한 지원이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섬별씨는 “다른 학교는 학교 측에서 모임을 만들어주고 장학금도 지급한다”며 “우리 학교는 창작하는 대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내 문학상들 또한 그 목적을 학교의 홍보에 두지 않고 진정으로 학생을 위하는 제도로 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아란 기자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