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문인을 찾아서 시리즈(2) 수필가 김문숙(약학·45년 입학)씨 인터뷰

여성수필의 단골소재가 남편·엄마·아이라는 것을 답답해하는 한 수필가가 있다. 그는 세계일주와 여성운동 등의 경험을 통 크고 힘 있게 글로 옮긴다. ‘나는 발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김문숙(약학 45년 입학) 씨를 9일(일)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의 ‘(사)부산여성폭력예방상담소’에서 만났다. 그는 1967년 국제신문과 부산일보에 칼럼을 쓰면서 등단했다.

과연 글 쓸 시간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글에 대한 철학을 쏟아놓는다.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쓰는게 아니라 안 써서 못 쓰는거야. 톨스토이는 매일 쓴 글이 인생독본이 됐잖아? 글은 바빠야 더 많이 써”

김씨는 수필가 말고도 가진 이름이 여럿이다. 부산여성폭력예방상담소장·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한국수필가협회 이사·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장 등 그는 실천하는 문학인이다. 아동작가 故이주호 선생은 “알고 있는 것을 전시하자는 인기의식을 배제하고, 인생의 진수가 무엇인가를 풍부한 자기체험을 통해 읽는 사람의 폐부에 와 닿게 한다”라고 그의 첫 수필집『내 人生에 소중한 것』을 평했다.

-활동이 문학에 미치는 영향은요?
“나는 글을 쓰려면 넓은 시야로 사회를 보라고 회원들(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원)한테 말해. 여성수필에서 매일 엄마, 사랑, 가정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독자가 읽고 싶지 않은거야. 철학 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제적이고 인도적인 경험이 필요해. 문장만 곱다고 잘 쓴 글이 아니거든.”

- 수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많은 것 같아요.
“수필은 팔리지 않고 나눠주는 책이라는 인식이 있지. 아무나 노력하지 않고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야. 일본수필은 짧고 재밌고, 미국수필은 통쾌해. 그런데 우리 수필은 시대가 변해도 똑같이 무겁고 지겨운데 기겁하겠어. 그러니까 노벨상을 못 받지. 앞으로 수필가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 내야 살아남을 수 있어.” 

- 선배님 글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여행이야. 글을 쓰려면 일상에서 떨어져 다른 문화와 인간생활을 접할 필요가 있어. 나는 세계일주만 세 번 했지. 돈이 많아서는 아니고(웃음)... 내가 이화에 다니다 중간에 경북대로 가서 지리과를 졸업했거든. 나와서 여행사를 차렸지. 여행사 사장은 항공료를 25%만 내고, 숙박도 싸게 할 수 있어서 가방 들고 비행기 타는게 뭐 숱했지. 지금이야 위안부 문제로 평양, 상해, 대만 등에 가는 게 전부지만”

- 제11회 이화문학상을 받은 제8수필집 『꽃들에게 지혜를 묻다』에도 유럽과 동남아 등을 여행한 기록이 있군요. 그럼 상담소는 언제부터 운영하신거예요?
“1986년부터. 여성운동을 하면서 서울에 ‘여성의 전화’가 생긴 것을 알고 한 번 가봤어. 성당 한 귀퉁이에서 가난한 여성을 돕는다고 하더라고. 이기다 싶어가지고 부산에 내려와 전화기 몇 대 사서 당장 시작했지.”

- 사비로요?
“응. 누가 돈을 주나. 성폭력 방지법이 생긴 96년부터 국가지원을 받았어. 10년 동안 여행사하며 번 돈으로 내 맘대로 해 온거지.(웃음)”

- 위안부 문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신건가요?
“90년에 일본 여성 학자한테 처음 이야기를 들었어. 그 때 윤정옥(現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선생님이랑 일본남자의 기생관광을 뿌리 뽑자고 김포공항에서 플래카드 들고 시위하고 그랬거든.”
김씨는 일곱 번째 에세이『쓰러진 자의 기도』를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도서이자 절규의 노래라고 소개한다. 작품 외에도 그가 낸 정신대 자료집은 3권에 이르며 그 중 『조선인 군대위안부』는 일본에서도 출판됐다. 

- 어떤 활동을 하셨어요?
“할머니들의 사연을 채록했고,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발 벗고 나섰지. 4년 전에는 부산에 90평짜리 위안부 역사관도 만들었어. 사비로 만든건데 요즘 전기세가 너무 나와서 걱정이야.(웃음) 남들은 고생스럽게 산다지만, 이게 고통이면 못한다꼬. 이제 돈도, 아무것도 없지만 내 인생은 나라를 위해, 이거를 위해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부산은 우짠일인지 잘 입고 돈 많은 여성은 많아지는데 나라 걱정하고 여성평등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교육기관도 없어서 공부하려면 서울에 가야돼. 그래서 부산에 여성교육 전문기관을 만들려고. 여성의 인권이 뭔지 진솔하게 가르치는 그런 기관. 그리고 이번 연말까지 서정적인 수필집을 하나 완성할 계획이야. 인간, 인성, 여성의 정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관한 글을 짧게 짧게 써서 낼거야. 나는 안톤 시나크의 수필을 닮았으면 하고 늘 바라.”

김문숙 선배는 마음속에 있는 글과 생각이 필기되는 기계가 발명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도 하루가 짧을 만큼 바쁘기 때문이다.

60~70년대 김지하의 시(저항시로 불림)를 좋아한다는 그는 오늘도 성명서와 건의문 쓰기에 바쁘다. 그리고 그는 바란다. “이화인들이 내 나라 조국을 생각하는 시간이 있기를!”

김혜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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