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가능한 여성해방이론 정립돼야
실천가능한 여성해방이론 정립돼야
  • 이대학보
  • 승인 198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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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해방이론의 쟁점」

「여성해방이론의 쟁점」의 초점은 역자도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Ⅱ부인 린다와 미리암의「불가능한 결혼」에 있다.

 린다와 미리암의「불가능한 결혼」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을 결합하여 여성억압을 이해하려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그 이론 성립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규정짓고 그 근거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 대한 철저한 이론적 해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불가능한 결혼」을 읽고나면 사회주의적 여성해방론의 오류가 무엇인가 불을 보듯 환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여성억압의 기제, 즉 여성문제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양자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더 이상 이론적 설득력을 잃게 된다. 우리 엿어학계에 린다와 미리암의 논문이 출간되는 의미와 중요성은 바로 이 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80년대 후반 여성운동은 우리 사회의 기본 모순과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학술계에서는 아직도 여성문제의 특수성을 잘못 이해하여 여성문제를 사회문제와 분리시켜 여성문제의 물적기초를 별도로 구성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그 이론적 재생산으로 학계에서는 여성문제 인식에서 오류와 혼란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 논문이 널리 읽혀지고 진지하게 토론됨으로써, 올바른 여성문제 인식이 확산되어 나가길 바라며, 이 논문에 대한 서평도 그러한 바램의 일환으로 쓰여질 것이다.

 여성연구자의 임무 중 하나는 여성억압구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정립하고 확산시켜 나간느 것이기 때문이다.

 린다와 미리암은 여성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이며 이들의 논문은 1985년에 발표되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이후 침체되었던 각국의 여성운동은 1960년대에 들어와 고양되는데, 자유주의적, 급진주의적,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 여성해방이념에 입각한 운동들이 전개되었다.

 자유주의적 여성운동은 부르조아 계급 여성들의 운동으로서 베티 프리단과 NOW(전국여성기구)로 널리 알려졌으며, 여성들이 내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차단하는 차별적인 법, 편견, 전통 등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이 보는 여성억압의 원인을 제거하더라도 차별, 착취당하고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여성들의 삶은 변화되지 않으므로 자유주의적 세계관에 기반된 이 운동의 오류가 들어나면서 그 영향력은 축소되고 있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는 보다 더 급진적인 여성운동이 시작되었다.

 급진주의적 여성운동으로 명명된 이 여성운동은 낙태권, 강간 금지, 양육 등의 문제에 행동적으로 대처하였고, 의식화 집단이라는 조직방법으로 여성대중들을 조직화해나갔다. 의식화 운동은 60년대 후반기 활발하게 지속되었으나, 내부지향적이고 비정치적인 조직화 방법으로서 그 이후 쇠퇴되어 버린다. 급진주의적 여성운동은 케이트 밀레트와 슐라미즈 파이어스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데, 남성지배·여성종속이라는 가부장제 체계가 여성을 억압하며, 이는 출산이라는 여성의 생물학적 기능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들에게 남성과 여성간의 대립은 가장 오래된 계급억압의 형태이며, 가장 중요한 모순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급진주의적 여성운동은 부르조아 여성운동보다 여성억압의 근본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이론적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우월하지만, 부르조아 여성운동에 비해 짧은 시간내에 영향력을 상실해 갔다. 그 이유는 여성을 전국적으로 결집한다든가 하는 안정된 조직을 구축할 수 없었으며,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였기 때문에 남성으로부터 분리되는 여성만의 공동체, 여성문화, 레즈비언 관계 등으로 모든 진보적 사회운동, 모든 대중적 기반으로부터 고립화되었기 때문이다.

 급진주의적 여성운동은 남성대 여성이라는 대립구도에 얽매여 여성억압을 계급적 맥락에서 분석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부르조아 세계관과 자본주의 체계를 용납하며 그것에 종속되어 버리고 말았다.

 70년대는 여성억압은 자본주의 체제와 계급 분석과의 통합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을 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론의 결합을 통해 여성억압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여성운동이 등장하였다.

 이 운동의 이념은 여성해방이「사회주의적 변혁을 통해 가속화될 수 있으나, 가부장제와 성별분업의 폐지에 목표를 두는 또 하나의 혁명을 통해서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며「여성해방혁명을 수행하는 주요 추진력은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범계급적인 자율적 여성운동」이라고 본다. 사회주의 여성운동은 등장 초기에는「여성연합」조직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나갔으나,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연합조직들이 붕괴되면서 초기의 운동성이 상실되고 실천보다는 사회주의와 여성해방론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논쟁의 숲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편 미국의 공산주의 여성운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체계의 설명력 덕분에 여성억압이 계급관계에서 초래되며, 그 결과 여성해방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으로서 가능하다고 보는 원칙은 세웠으나, 미국여성이 처해있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총체적 분석을 하지 못하면서 여성억압의 특수성을 희석화시키고, 여성억압을「노동자 계급에 대한 일반적 착취의 한 변형인 동시에 양적인 심화현상」으로 축소시키는 기계적 유물론의 편향에 빠져있다.

 이러한 이론적 문제는 미국의 공산주의 운동의 실천상에서의 오류로 이어져, 여성억압의 특수한 문제들로 여성을 조직화해내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여성운동을 계급투쟁으로부터 이탈되는 것, 반노동자계급적인 것으로 비판하였다. 미국의 공산주의 운동의 이러한 오류는 사회주의 여성운동론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잘못된 이론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좌파 여성운동의 주류로 등장하게 된 변수가 된다. 60~70년대 공산주의 운동이 범했던 그와 같은 오류는 사라졌으나, 여전히 여성운동내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여성운동의 주변에 머물고 있다.

 린다와 미리암은 이렇게 미국의 현단계 여성운동을 진단하면서, 공산주의적 여성운동론의 입장에서,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의 이론과 실천상의 오류들을 지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비판에는 공산주의 여성운동이 사회주의 여성운동에 대한 투쟁과 통합의 변증법을 통해 좌파 여성운동 진영을 강화시켜내여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면 린다와 미리암은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론의 결합을 왜「불가능한 결혼」에 비유하면서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는가?

 사회주의 여성운동론은 급진주의 여성운동론과 마르크스주의 여성운동론의 이론적 통합을 시도하여 있다. 급진주의로부터는 남성지배-여성종속체계인 가부장제 개념과 그 타당성을 빌어오며, 마르크스주의로부터는 사적유물론을 빌어와 가부장제의 물적토대를 찾으려는 작업을 냈으며, 그 결과 급진주의 여성운동론이 가부장제를 초역사적으로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으로 본 것에서, 가부장제의 물적토대가 성별분업과 그 성별분업에서 이들을 보는 남성의 물질적 이해에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부장제 개념에 사적유물론의 토대를 부여하였다고 보았으며, 그 결과 급진주의 마르크스주의의 오류를 극복한 진정한 여성해방이론을 만들어 내었다고 자신하였다.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에 의하면 가부장제는 남성지배-여성종속의 사회관계의 총체성을 표현하는 것이며 이는 계급관계와 동등하게 사회성격을 결정하는 억압체계이다. 따라서 가부장제와 생산양식은 각기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움직인다. 이는 생산관계가 다른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규정하며, 따라서 남녀간의 사회적 관계도 생산관계의 규정을 받는다는 사적유물론의 기본전제를 부정하고 있고, 사회는 사회의 각 부분과 전체가 유기적 결합을 이루고 있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부장제에 이어 성별분업에 대한 분석에 들어가면 사회주의적 여성운동이 사적 유물론을 포기함으로써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과 동일한 이론적 기반에서 있다는 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성별분업이 여성억압의 구체적 현상태이며 가부장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기초로 파악된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주요목표는 성별분업의 철폐가 된다. 그렇다고 보면 성별분업이 무엇때문에 발생하였다고 보며 어떻게 철폐될 수 있는 것인가가 이론적 관건이 될 것이다. 린다와 미리암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성별분업이 생산양식과 무관하게 남녀관계에서 파생되어 발생,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 비판을 집중하였다. 여타의 사회적 분업과 마찬가지로 성별분업도 특정 생산양식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루어진다.

 인류 최초의 단계에서 성별분업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든 인간에 대한 자연의 지배를 의미하며, 이것을 역전시킬 수 있는 힘은 생산력 발전에 달려있다. 결국 사유재산의 발생 이전 시기에는 본질적으로 비적대적이었던 성별분업이, 계급관계의 발생 이후 그 지배를 받으면서 질적으로 변화하게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별분업의 유지는 전체 노동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 다음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정치적 전략부문에서 린다와 미리암은 이 이론은 주로 백인의 쁘띠 부르조아 여성지식인에 의해 재생산되면서 여성해방운동의 정치적 전략에 대한 관심이 기본적으로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자율적 여성운동이 남성 정치운도, 전위 노동자계급정당으로부터 독립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전략임을 밝힌다. 뿐만아니라 범계급적 전선을 어떤 계급이 이끌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에게 우선권이 부여되지 않고 그 결과 여성운동에서 쁘띠 부르조아의 주도권이 허용되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린다와 미리암은 이상에서와 같이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이론적으로 사적 유물론에 의거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철저히 사적유물론을 부정하면서 여성문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실천상에서도 여성운동의 목표, 대상, 주체가 모호하거나 잘못된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음을 올바로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린다와 미리암의 이러한 비판을 우리의 현실에서 소화해낼 필요가 있다. 민족민주적 여성운동은 80년대 후반 잘못된 이론적 편향을 극복하고 과학적 여성해방이념을 바로 세우면서 이제 그 대중적 지반을 넓혀나가는데 매진하고 있다. 결국 실천과 유리된 이론은 죽은 이론임을 다시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