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미래의 랭킹을 바라보며
[교수칼럼] 미래의 랭킹을 바라보며
  • 이대학보
  • 승인 200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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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석 교수 (과학 철학 전공)

우리 학교는 주요 일간지와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이 실시한 몇 차례의 이런저런 대학 평가에서 대단히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이른바 ‘랭킹’에서 적잖은 대학들이 상승과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 이화는 견고하게 Top 10 이내의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탑텐의 유지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수많은 국내 대학들이 특히 몇 년 전부터 문자 그대로 뼈를 깎는 인내와 노고를 마다 않으며 치열한 경쟁의 마당에서 전력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여러 대학이 내적 고통을 감수해가면서 구조의 합리화를 추진하고, 교수들을 독려하거나 (일부 대학의 경우 심지어) 닦달하여 연구 프로젝트 유치와 연구 성과의 양적-질적 신장을 도모하고, 강의의 질을 높여 교육 수혜자의 필요와 요구에 더 만족스럽게 다가가려고 밤잠 설쳐가며 애쓰고 있다. 이런 배경을 함께 고려한다면 우리의 이런 ‘유지’는 실질적으로는 ‘현상 유지’가 아니라 높은 성장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 눈물겨운 성과다. 우리는 이에 대해 충분한 긍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필자는 솔직히 우리 학교가 국내 랭킹 8위냐 9위냐, 또는 그보다 한두 계단 위 혹은 아래냐 하는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아래위로 한두 계단을 치열하게 다투는 최근의 랭킹 경쟁이 대학 사회에 양적 지표에 대한 강박 관념을 주입하지는 않을지, 또 그것이 대학의 연구 역량과 교육의 발전이라는 취지에 부합하는 선을 지나쳐 불필요한 소모성 투자와 대학 문화 전반에 걸친 왜곡을 초래하지는 않을지 두렵다. 하지만 경쟁의 순기능은 부인할 수 없고, 우리는 그 점을 잘 살려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는가? 이 글의 주된 독자일 이화의 학생들과 대학 순위의 관계는 무엇인가?

당연히 우리는 이화인으로서 이화의 선전(善戰)이 자랑스럽다. 반대로 만일 이화여대의 순위가 다만 두어 단계라도 하락한 평가가 지면에 발표된다면 우리는 몹시 속이 상할 것이다. ‘이거 뭐 잘못된 것 아냐?’ 이렇게 따지고 싶어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위에서 ‘나의 몫’은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학생이다. 재학 중인 학생이 대학 평가를 좌우할 여지는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미미하다. 쉽게 말해 우리는 그 평가에 기여한 바도 없고, 따라서 책임질 일도 없다. 하지만 이화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나의 위상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이화에 대한 외부의 평가 앞에서 마음이 두근거리고, 가슴 뿌듯한 긍지나 때로 어떤 진한 아쉬움을 느낀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이화인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친다면, 당신에게 이화의 순위가 단지 자랑스럽거나 아쉽기만 할 뿐이라면 그 순위는 당신의 것은 아니다.

모든 학교의 미래가 그렇지만 이화의 미래도 열려있다. 열려있다는 말은 비약적인 성장으로부터 쇠락까지의 모든 가능성을 포괄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교가 점점 더 빛나는 미래를 열어나가길 소망한다. 그런 미래에 우리는 모두 그 빛을 후광으로 얻을 것이다. 나 자신의 이런 미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그 답은 단순하다. 스스로 당당하고 유능하고 아름다운 이화인이 되는 것이다. 자기의 정성과 능력을 세상에 펼치고 베풀면서, 그리고 안팎으로 서로 도움의 손길을 펴고 또 엮으면서, 거기서 스스로 재미와 보람을 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 해에 교수들이 논문을 몇 편이나 발표하는지, 교육지원 시설의 수준은 어떤지, 산학협력의 건수와 규모는 어떤지… 이런 항목들은 억지로 빚어낼 수도 있는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학 평가의 세부 항목과 가중치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이화가 배출하는 이화인들의 됨됨이와 능력과 그들의 활동은 평가의 항목으로 명시되지 않은 채 영원히 브랜드 가치의 결정적 잣대 노릇을 할 것이다.

문제는 미래다. 자연과학을 다루는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에는 종종 자기가 과학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어서 불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는 예체능계여서, 혹은 문과여서 과학을 배울 기회가 적었다고. 열심히 해도 ‘이과’ 학생들만큼 하기 어렵다고. 사실 지난 몇 학기의 통계를 놓고 보자면 (뜻밖에) 이런 우려는 근거가 미약하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그 학생의 말이 옳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더 많이 배운 학생들은 과학을 다루는 강의에 더 편하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유해보자. 학기를 40점 수준에서 출발해 75점쯤으로 마칠 수 있었던 사람과 80점에서 출발해 85점 높이에까지 도달한 사람 중 누가 더 성공적인 한 학기를 보낸 사람인가? 그것은 당연히 전자다. 그녀가 매 학기를 그렇게 보낼 수 있다면 몇 년 뒤에 그녀는 훨씬 더 풍부하고 똑똑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이화여대가 우리나라에서 혹은 세계에서 몇 등쯤 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거기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직접 기여해서 결정할 미래의 순위에 더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