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가 펼쳐졌다. 황토빛의 오래된 졸업장이 눈에 띈다. ‘이화여전 3회 가사전수과 졸업, 임정자’.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전) 3회 졸업생인 할머니부터 현재 본교를 다니고 있는 손녀들까지. 임씨네 가족은 직계 가족 중 8명이 3대째 이화여대(이대)를 다니고 있다. 임정자씨가 낳은 3남2녀들은 모두 의사, 두 딸 은 본교 의대 출신이고 큰 아들 최수승씨는 현재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 임씨의 둘째 며느리 송진이(의학·83년졸))씨도 본교 의과대학을 나왔다. 손녀들도 모두 본교를 졸업했거나 재학 중이다.

임정자씨의 입에서 이화의 산 역사가 줄줄 흘러나온다. 교수 연구실 등으로 쓰이는 진선미관은 임씨가 다닐때는 기숙사였다. “당시에는 기숙사에 있는게 너무 좋아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몰랐어. 김옥길 전 총장과도 언니동생이라 부르는 막역한 사이였어”

임씨 가족 들의 얘기에는 이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등록금부터 학교 건물 공사 등 이대의 작고 큰 변화에 대한 얘기하다보면 어느새 훌쩍 시간이 지나가 있다.

등록금은 1대인 임정자씨 때는 200원. 2대는 50만원. 3대는 170만원에서 약 300만원까지 이대 등록금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임씨의 첫째딸 최진주씨는 “대학생때도 고 3 처럼 공부했는데 요새 애들은 너무 노는거 아니에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영주씨는 “예전엔 시간표가 고등학교 때처럼 짜여 있어 1주일에 공강없이 58시간씩 듣곤 했어요”라며 고개를 내둘렀다.

학교 주변 맛집 이야기에 ‘딸기골’과 ‘가미’·‘그린하우스’등의 끊임없이 가게 이름들이 쏟아져 나온다. 3대 손녀들의 눈이 휘둥글 해졌다. “그 때도 그 가게가 있었어요?” “그럼, 그린하우스는 없어졌더라”고 어머니들은 사라진 가게에 대한 아쉬움을 딸들에게 전했다. 둘째 며느리 송씨는 이대 앞 분식집 주먹밥의 맛을 특히 잊지 못한다. 딸 최선혜(의직·2)씨를 데리고 가서 먹을 정도. 최씨는 “어머니가 그 분식집 주먹밥과 우동은 꼭 먹어봐야한다고 데리고 가셨어요”라며 웃었다.

가끔씩 가족들은 본교 교정을 산책하기도 한다. 임정자씨는 “학교를 다녔을 당시 두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가늘었던 소나무 줄기가 이제는 팔로도 다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때, 이제는 나무로 우거진 교정이 보니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큰 아들 최수승씨가 고이 간직해둔 어머니 학창시절의 옛 사진들을 펼쳤다. 본교 대운동장에 모인 이화여전 학생들과 본관 앞에서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 보인다. “여기가 정말 우리학교에요? 지금하고 똑같다”. 가족들은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임씨의 손녀 윤경씨는 “앞으로도 지금의 이대와 같다면 만약 결혼해서 딸을 나면 꼭 이대에 보낼 거에요”라고 다짐했다.

이들 가족을 3대씩이나 이대로 이끈 매력은 무엇일까. 이대하면 신록이 생각난다는 최영주씨는 “때묻지 않은 젊은 푸름이 이대의 매력”이라 전했다.

비록 이제 어머니의 사진은 빛바랬지만 변치 않는 푸른 신록처럼 이화를 향한 이들 가족의 사랑은 계속 되고 있다.

김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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