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회에서 대학의 변신은 ‘필요’가 아니라 ‘필수’입니다” ‘통섭: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세계화’를 주제로 강연한 본교 최재천 석좌교수(생명과학 전공)는 대학과 학생 모두에게 초지일관 ‘변화’를 요구했다. 새로운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대학생들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융통성을 갖춰야 하며, 대학은 교양보다는 전문교육에 치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문의 국경을 넘을 때마다 여권을 검사하는 불필요한 과정은 생략돼야죠”
최재천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전공을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떠받들고 살며, 대학 내에도 남의 전공에 진입하는 것을 꺼리는 계파적 학문 분위기가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그 결과 문과학생들이 물리학과 전공 수업을 한 과목도 제대로 못 듣는 기(奇)현상이 나타났다는 것.

그는 대학 내 교양 수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나노과학의 허와 실’·‘중국 문학의 전망과 수요’ 같은 쉬운 소개 강좌를 마련해 학생들에게 남의 학문을 이해했다는 착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양 수업은 백화점이나 구민회관 문화센터에서 해도 되니 대학은 전공교육에 힘써야 한다”며 변화를 촉구했다. 최 교수는 미래사회는 기초를 튼튼히 갖춘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한 분야만 전공해서는 안심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고령화 시대에 80년 가까이 대학 4년 전공을 우려먹고 살겠다는 생각은 ‘도둑놈 심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21세기를 ‘통섭의 시대’라고 명명하며 “대학은 어설픈 부·복수전공제도가 아니라 여러 학문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섭(consilience)은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 주창한 개념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과 이론들을 연결해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대학들은 현재 세계적 경향인 학문의 통섭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생물학 분야만 해도 전공이 생화학·유전학·면역학 등 따로따로 나뉘었던 것이 UC 버클리 대학을 선두로 ‘통합생물학과’로 합쳐지는 추세라고.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간학문적·학제적 연구가 유행이지만 이는 다른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협력해 논문을 내는 수준이라 안타깝다는 지적도 놓치지 않았다. 최 교수가 그동안 몸담았던 서울대를 떠나 본교로 부임한 이유도 학문의 통섭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생명이란 워낙 복잡한 현상이라 여러 분야가 한데 모여 통합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과학 내, 또는 인문학 내에서의 통섭에서 나아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성공적으로 만나야 결국 모든 학문의 통합이 이뤄질 것이라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이원적 제도는 과감히 걷어내고 예전 문리대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이번 강연을 통해 21세기 여성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2003년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궁리출판, 2003)는 저서를 통해 이 땅에 여성시대가 오고 있음을 공표한 바 있다. 그는 진정한 여성시대가 열리려면 TV 저녁 뉴스의 리드 앵커, 주요 일간지의 주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자리에서 여성이 우뚝 서야한다고 말했다. 이들 분야는 절대적인 권위가 수반되는 직종이라 남성들만의 성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는 최근 미국 CBS의 대표 앵커로 발탁된 케이티 쿠릭(Katie Couric)을 소개하며 “여성이 뉴스를 리드하면 심각하던 뉴스가 갑자기 경박해지는 것도 아니건만 우리나라는 아직 여성 리드 앵커가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여성들이 진출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는 무엇보다 전문직”이라며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돼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중에서도 실력과 연구 성과로 대우받는 과학 분야야말로 차별이 적어 여성들에게 유망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학생들에게 “맹목적으로 돈만 좇아 직업을 찾지말고 돈이 나를 좇도록 만들라”며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조언을 남겼다. 최 교수 본인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는 것이 좋아 생물학을 시작했고, 묵묵히 연구를 계속해왔는데 어느 순간 남들이 인정하는 전문가가 돼 있었다는 것. “전문가가 되십시오. 1등이 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도 한 분야에서 유일한 사람(only one)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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