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총연극회 신입생맞이 공연 ‘보지의 독백’ 리뷰

2001년 국내 초연 이후 해마다 앵콜 공연을 거듭한 화제의 연극이 있다. 여성의 성기를 둘러싼 솔직담백한 이야기로 인기를 얻었던 이브 엔슬러(Eve Ensler)의 ‘버자이너 모놀로그(The Vagina Monologues)’.

본교 연극동아리 ‘총연극회’는 이 작품을 각색해 ‘보지의 독백’이란 제목으로 막을 올렸다.
이 연극은 9일(목)∼11일(토) 가정관 소극장에서 공연됐다.

까만 벽, 까만 천장. 어두운 무대 위에 새빨간 천이 조각조각 찢겨진 채 흩뿌려져 있다. 한 배우가 조용히 나와 관객에게 다소 충격적인 말을 건네며 공연을 시작했다. “우린 오늘 ‘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거창하고 환상적인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냥 그에 대한 사실일 뿐입니다.” 암묵적으로 금기시돼온 단어가 배우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터져 나오자 여기저기서 흠칫 놀라는 관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연극은 보통 ‘거기’로 돌려 말하는 여성의 성기를 직접 언급하며 그동안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성(性) 담론에 대해 거침없이 외쳐댄다. 극의 형식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토리를 전개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났다. 각양각색의 여성들이 인터뷰 형식으로 자신의 내밀한 경험들을 ‘독백’하는 모습은 TV 토크쇼를 연상시킨다.

세 명의 배우 채민지(정외·3)씨·이은지(법학·3)씨·조민하(컴퓨터·3)씨가 역할을 바꿔가며 열연을 펼쳤다. 6살 소녀부터 70대의 할머니까지, 그들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여성 육체에 대한 폭력과 애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고 또 웃었다.

특히 전쟁 중에 강간을 당한 여성이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꺾은 채 탁자에 드러누워 자신의 끔찍했던 경험을 읊조리는 장면에선 관객들 모두 숨을 죽였다. “군인들이 내 거기에 길고 두툼한 총을 박은 다음부턴 모든 게 끝났어”라는 말과 함께 그녀의 한맺힌 웃음소리가 낮게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슬픈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차단당한 여성들에게 진정한 쾌락을 일깨워주는 한 레즈비언의 독백은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흉내만 내는 가짜 신음소리가 아닌 ‘깊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신음소리’를 내뱉는 그를 통해, 음지 속에 숨었던 여성들의 쾌락이 양지로 드러난다. 이때 점점 고조되는 클래식 선율은 격렬함을 한층 더한다.

성기를 절대 만지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과 어릴적 겪은 성폭력으로 ‘그곳’을 죄악의 장소로 여겨온 10대 소녀의 독백도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레즈비언인 옆집 언니의 갑작스런 애무로 ‘성기의 행복’을 찾은 그 소녀는 자신이 당한 일을 “나를 천국으로 안내한 좋은 강간”이라 말했다.

이외에도 여성들의 초경 이야기, 음모를 불결하게 여기는 남편과 사는 중년 부인의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든 이야기를 아우르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우리의 신체 중 가장 중요한 곳을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는 이 사회에서, 비뚤어진 성 관념을 진실하게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이제까지 감추기에 급급했던 여성 성기에 관한 고백들은 때론 우리의 속을 시원하게 하기도, 때론 가슴을 아프게도 한다.

공연은 “여러분의 보지는 무슨 옷을 입고 있나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대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무대 위 그들의 ‘독백’은 더 이상 독백이 아닌 커다란 울림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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