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지난 2일(목) ‘조선시대의 살림집’·‘나들이’·‘전통혼례의 차림새’·‘女·性·共·感(여성공감):함께 느끼는 여성 이야기’란 4가지 전시 테마로 새롭게 단장했다. 각각의 상설전시관이 테마를 가진 기획전의 형식을 띠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여·성·공·감’이 전시되는 2층 현대미술전시관은 올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시대 선비댁에 놀러가기

전시관 ‘조선시대의 살림집’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단아한 거문고. 둥기당 둥기당,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사랑채 안에 거문고 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엉덩이가 다 시큰할 정도로 시원한 대나무 등메자리 위에서 선비가 공자왈 맹자왈 책을 읽는 모습이 그려진다.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찾아오면 사랑방엔 고동색 가구들이 가득찬다. 김인호 학예연구원은 나무의 성질에 따라 그에 알맞은 가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안채에는 화려한 나전칠기 가구들과 경대가 놓여 있다. 나전칠기가 정교하게 장식된 경대를 보니 곱게 단장하는 안방마님이 그려진다.

사랑방을 샅샅이 둘러보고 나면 여인들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담긴 작업공간이 나타난다. 김 연구원은 물레를 가리키며 실 뽑아내는 과정을 손짓으로 표현했다. 옛 여인들은 이 실로 베틀 앞에 앉아 밤낮으로 옷을 만들었을 것이다. “빨래를 할 땐 먼저 옷의 천을 다 뜯어냈죠. 천을 빨고,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까지 한 후에 다시 바느질해 옷을 만들었습니다” 늘 청결한 옷을 강조했던 선비들 때문에 여인들의 손은 마를 날이 없었다.

◆나들이 나선 옛 사람 따라가기

계절이 바뀌어 마음이 싱숭생숭 할 때면 옛 사람들도 ‘나들이’를 떠났다. 봄과 가을이 오면 남자들은 새하얀 도포를 멋들어지게 두르고 외출했다. 반면 여자들은 푸른색 장옷이나 쓰개치마를 뒤집어쓰고 얼굴만 빠끔히 내민 채 집 밖을 나섰다. 달빛이 어스름하게 비치는 밤에는 이몽룡의 앞길을 밝혀주는 방자처럼 늘 호롱불을 갖고 다녔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여름날이면 하늘하늘한 모시나 삼베 한복을 즐겨 입었다. 박기희 학예연구원은 “하지만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여자들은 속겹삼을 꼭 입고 다녔지요”라고 전했다. 세차게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엔 김삿갓처럼 대나무 방립을 쓰고 또각 또각 나막신을 신었다. 살을 파고드는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나들이도 한복 위에 보송보송한 털을 달고 풍차(귀까지 내려오는 방한모)만 쓰면 춥지 않았다.

◆창호지 뚫고 신랑신부 엿보기

동네 사람들이 첫날밤을 치르는 신랑, 신부를 보려고 창호지에 침을 묻혀 구멍을 내던 ‘신방지키기’ 풍경. 전시관 ‘전통혼례의 차림새’에 가면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혼례에 참석하는 신랑의 옷차림새는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 왕에게 하사받은 푸른 관복처럼 기품있는 모습이다. “평민이라도 결혼하는 날만큼은 관복을 입을 수 있게 했어요”라고 박선희 학예연구원은 설명했다.

금방이라도 ‘어흥’하고 소리칠 듯한 호랑이가 그려진 빨간 담요가 눈에 띈다. “이 유물은 가마를 덮는 가마덮개로, 집을 떠나 시댁으로 가는 신부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담겼죠” 첫날밤 신랑, 신부는 꽃들과 새들이 수놓아진 병풍 아래서 술잔을 기울였다. 날이 밝으면 새색시가 녹의홍상을 갖춰 입고 시부모님께 정갈하게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여성의 외침, 온몸으로 느끼기

중앙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유일하게 현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관 ‘女·性·共·感(여성공감):함께 느끼는 여성 이야기’가 나온다. 이곳엔 이불, 김원숙, 정소연 등 ‘여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는 여성 작가들의 미술품이 모여있다. 이 작품들은 여성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변화’를 외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촘촘하게 땋은 댕기머리를 마구 풀어헤친 옛 여성의 얼굴을 그린 이순종의 <여인>. 권윤경 학예연구원은 “여성의 억압과 욕망을 머리카락을 통해 분출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소연의 <Would You Like Some Pudding?>은 알록달록한 인조보석을 이용해 금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표현한 작품이다. 아름답지만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내놓아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음식을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을 비꼰 것이라고. 두 전시관을 잇는 통로에는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며 느낀 생각과 감정이 담긴 글도 적혀있다.

이번 테마 전시에 대해 오진경 박물관장은 “같은 유물이라도 다양한 테마에 의해 전시기획을 달리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가 담긴 흥미로운 전시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女·性·共·感(여성공감):함께 느끼는 여성 이야기’는 5월4일(목)·‘전통혼례의 차림새’는 6월3일(토)·‘나들이’와 ‘조선시대의 살림집’은 7월31일(월)까지 관람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