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온라인게임을 해서 그런지 피곤하네요.” 학생들과 BK21 신청을 준비 중이던 본교 류철균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 전공)가 8일(수) 인문과학대 교수휴게실에서 기자를 맞이하며 한 말이다.

소설가 ‘이인화’로 더 잘 알려진 류 교수는 현재 게임·영화 등의 시나리오를 쓰는 스토리 제작자로 활약 중이다. 그가 북유럽신화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각색한 온라인 롤플레잉게임 ‘길드워(GuildWars)’는 작년 4월에 출시됐다. 조국을 잃은 영웅이 여러 대륙을 돌아다니며 대결을 통해 왕좌에 오른다는 것이 이 게임의 스토리다. ‘길드워’는 최단 시간 내에 이용자 수 100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를 처음 게임 시나리오 작업으로 이끈 것은 많은 젊은이들을 게임 중독 현상에 빠지게 했던 ‘리니지’. 당시 ‘리니지2’의 선풍적인 인기 비결이 궁금했던 류 교수는 작가 특유의 호기심으로 PC방에 들어섰다. “와, 이게 음악도 정말 좋고 게임 속 ‘엘프마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거예요.” 그에게 있어 게임 ‘리니지’와의 만남은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또 다른 예술’을 발견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야기와 음악, 비주얼이 혼합된 디지털 게임이야말로 인류의 새로운 예술이라고 느낀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분야를 평생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본래 국문학 전공인 류 교수가 재작년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로 소속을 바꾼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가 자리를 옮긴 또 다른 이유는 디지털 산업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현재 한국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전 세계 사용자들이 약 1억 명에 달하는 등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국가경쟁력은 높은데 비해 개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디지털미디어학부의 ‘디지털 시나리오텔링’ 과목에서 애니메이션·게임·영화 등의 시나리오 쓰는 법을 가르친다.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훈련은 그가 국문과에서 강의하는 ‘문예창작론’ 수업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그림·음악 등 다른 요소와 통합해 시나리오로 만드는 과정은 다르다고 한다. 류 교수는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작가를 키우는 보람이 있어요”라며 뿌듯해했다.

온라인게임이 한국 문화산업의 황금시대를 열어줄 것이라고 말하는 류 교수는 온라인 세계 예찬론자. 하나의 삶이 아닌 다양한 인생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게임 ‘길드워’에서 ‘비키맘맘공주’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한 20대 여자를 소개했다. “이여자는 실제 성격은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데 전투만 들어가면 어찌나 무서운지, 그녀의 온라인 속 삶은 아주 초인적인 셈이죠”라며 류 교수는 크게 웃었다.

물론 그 역시 ‘길드워’ 안에서 현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자정에서 새벽2시 사이에 그는 어김없이 강한 전투력을 지닌 전사 ‘몽골리안포스’가 된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에 하나의 인물로서 사는 것, 즉 조물주인 동시에 곧 피조물이 되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면서 새로운 시대를 사랑하게 됐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나 또한 과거만 고집하며 살아갔겠죠.”라며 웃는 그의 미소 속에서 ‘젊은 열정’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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