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조동일 석좌교수(국어국문학 전공)

­-연구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의 차이는
연구는 학문을 스스로 개척해 창조하는 것이고, 공부는 이미 남이 이뤄 놓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둘은 삼각형의 밑변과 꼭지점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을 섭취하면 밑변의 길이가 늘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깨닫고 생각하면 꼭지점이 높아진다. 밑변을 넓히는 데만 힘쓰고 꼭지점을 올리지 못하면 보이는 것이 없다. 반면 밑변이 좁은 것을 무시하고 꼭지점을 무리하게 올리면 그 구조물을 쉽게 허물어질 것이다.

▲ 계명대 조동일 석좌교수
­-대학생에게 학문이란

학문은 진실을 탐구하는 행위다. 여기서 진실이란 말을 쓴 것은 종교적 진리나 개인의 신념과는 다르고, 검증가능하고 논리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와 그 방법을 배우는 학문은 독백이 아닌 대화·토론으로 이뤄진다. 학생은 공부를 통해 학문을 소극적·피동적으로 받아들이다가 교수와 대화하면서 능동적인 연구 활동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즉 연구 방법을 학문으로 체득하고 실제로 훈련하는 것이 대학생활이다.

또 독서를 통해 학문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구경하고, 그 중에서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킬 수 있는 책을 골라 비판적으로 대안을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진정으로 토론 상대가 되고 극복할만한 책을 만나면 자신만의 학문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교양의 영역은 어떠한가

교양학문은 공통의 영역에 해당하는 ‘거실’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교양을 ‘현관’이라 여겨, 각자의 전공인 ‘방’에 들어가면 다시는 서로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교양은 학부뿐만 아니라 박사 과정에서도 중요시해야 하며, 또 이러한 공동의 영역을 전공하는 학자도 있어야 한다. 우리의 대학은 말로는 ‘거실’에 해당하는 교양학문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공동의 영역이 없다. 학문의 방법·분류 등을 연구하는 학문론을 강의하는 교과목이 없다는 것이 명백한 증거다. 앞으로 학문론이란 계열 속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 등 다양한 교양과목이 개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 학문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나

세계화는 양질의 수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외국의 것을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연구한 것을 검증하고 보편적인 논리로 구성해 세계의 학문 흐름에 영향을 끼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자 중에는 서양 학문을 수입해 앵무새처럼 ‘∼하더라’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학문을 장기적으로 탐구하고 개척하는 자세가 부족한 ‘학문의 노예’라고 할 수 있다.

대학 교육은 학생들이 학문의 주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세계 속에 우리 학문을 알리도록 해야한다. 따라서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영어·일어 등 외국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은 질좋은 수출품을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대학에서 이뤄지는 영어강의는 수입품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 되지 않으므로 지양해야 한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