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8일(금) 용산에 새로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있던 것을 민족정기를 바로잡자는 의지로 이전한 것이다. 그러나 개관한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 발견됐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1층 구석기실에 마련된 ‘한국 고고학 연표’에서 눈을 씻고 봐도 ‘고조선’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규교육 과정을 마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단군신화’에 대해 알고 있다. 실제로 고조선은 약 2천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연표를 보면 반만년 역사로 일컫는 우리나라 역사의 절반이 고조선과 함께 사라진 셈이다.

이 문제의 연표에는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청동기·초기철기 시대­원삼국 시대­삼국 시대(고구려·신라·백제·가야)­남북국 시대(발해·통일신라)­고려­조선’순으로 표기돼 있다. 연표의 다른 부분에 신라·고려 등 국가명이 병기됐다면, 고조선 역시 시대와 함께 표기됐어야 한다.

이에 대해 3일(목)자 동아일보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이영훈 학예연구실장은 “고고학적으로는 유물로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박물관의 고고학 연표는 국사 교과서의 역사 연표와 의미가 다르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이유를 알고 관람하는 방문객들이 몇이나 될까.

몇 년 전부터 일본과 중국의 우리나라 고대사(史) 왜곡에 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뿐 아니라 고조선·발해 등 북방사 전부까지도 넘보고 있다. 역사평론가 이덕일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황국사관으로 고조선의 역사를 아예 말살해버리고, 중국은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통해 한국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는 ‘없는 역사’도 날조하며 자국의 기원을 높이는데 혈안이 된 국가들 사이에 위태롭게 서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역사’마저 스스로 축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시민들의 의아함은 당연한 것이다. 역사 문제와 관련해 몇 번의 국가적 소란을 겪은 국민들은 불안하다. 아시아 최고 규모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박물관이라면 적어도 그들의 정체성에 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흔히들 춤에는 민족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 민족은 춤의 기원을 ‘단군신화’에서 찾고 있다. 이처럼 ‘단군’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것을 넘어 민족 정서의 원류 그 자체다. 이런 차원에서 고조선은 우리 역사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한민족의 원형인 것이다.

연표는 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을 연대의 차례로 표기한 것이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연표에 들어가야할 명백한 ‘사실’을 빠뜨린 것이다. 우리 전통문화의 소산과 첨단기술의 접목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이제 그 규모와 상징성에 부끄럽지 않도록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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