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느끼지 않는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미하엘 엔데의 책 「모모」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닿는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 현대인들은 시간을 뺏긴 사람처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여기 ‘빨리’를 외치는 세태에 역행해 ‘천천히’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슬로라이프(slow life)’를 추구하는 ‘슬로(slow)족’이 바로 그들이다. 슬로라이프는 ‘느긋함’을 즐기는 삶이란 뜻으로 생활 속 여유를 찾자는 것이다.

이들은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기보다 걷기를 좋아한다. 서울교대 이아라(과교·1)씨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갈 때 세 정거장 정도는 걸어간다. 그는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천천히 걸으며 내 삶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산책·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슬로족이다. 북디자이너 정지현(서울시 도봉구·24)씨는 틈날 때마다 서울 근교로 여행을 간다.

전등을 끄고 촛불을 켜는 것도 슬로라이프를 실천하는 방법. 지난 8월29일(월) 후문에 위치한 까페 ‘체화당’에서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자 하는 사람들이 ‘캔들나이트’ 행사를 열었다. 전등이 모두 꺼진 까페를 밝히는 것은 오직 촛불들. 초대된 사람들은 촛불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이 행사는 빠른 시간의 흐름에 익숙해져 잊혀져가는 느림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다. 행사를 준비한 미야자와 아키(국문·2)씨는 “요즘엔 밥 먹을 때조차 TV를 켜기 때문에 사람들 간의 소통이 단절된다”며 “촛불을 켜고 대화를 나누면, 주변을 생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slow food)’ 운동 역시 슬로라이프를 위한 것. 슬로푸드는 빨리 조리된 음식인 패스트푸드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슬로푸드 운동가들은 가정식·전통음식을 선호한다. 이들은 패스트푸드를 반대할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속도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문명 전반에 제동을 건다. 「슬로푸드 슬로라이프」의 저자인 경남대 김종덕 교수(사회학 전공)는 “이윤을 위해 돼지를 억지로 빨리 키우고 닭에게 산란촉진제를 먹이는 것이 요즘의 실태”라며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음식에 있어서도 속도에 매몰되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에 맞는 속도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슬로라이프는 궁극적으로 자연을 위한 삶이다. 전기 사용을 줄이고, 유기농 음식을 먹는 등 친환경적인 생활이기 때문이다. 최샛별 교수(사회학 전공)는 “슬로라이프는 삶의 질을 중시하면서 등장한 라이프 스타일”이라며 “‘웰빙’이 화두로 등장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평했다.

삶의 여유와 함께 환경까지 생각하는 슬로라이프. 도심의 답답한 공기 대신 산책 중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이 그립다면, 당신은 이미 슬로족.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