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의 국내 대학기록관... 우리 학교 이화역사관 개교 120주년 맞아 새단장 예정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 과거에 남겨졌던 기록물이 축적되고 체계적으로 보존돼야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인식한 정부와 몇몇 국립·사립대학들은 영구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보관하는 기록관(Archives)을 세웠다. 정부 문서를 수집·관리·보존할 목적으로 세워진 행정자치부 소속 ‘국가기록원’, 우리 학교의 ‘이화역사관’(전 이화역사자료실), 서울대의 ‘서울대학교 기록관’ 등이 그 예다.

경남대 이종흡 교수(사학 전공)는 “대학기록관은 대학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사회 전반의 정체성을 확립시킨다”고 한국기록학회가 발간한 「기록학 연구, 3호」(2005)에서 대학기록관의 중요성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대학기록관의 설립 필요성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대학기록관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양대 박찬승 교수(사학 전공)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대학기록관은 대학사(史) 자료실 수준으로 시작한 탓에 대학기록관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대학기록관은 대학 기록 중 전시할 가치가 있는 것을 선별하는 대학사(史) 자료실의 역할 뿐 아니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대학 기록도 함께 보존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립대학들은 대학의 중요 기록을 국가기록원에서, 사립대학들은 이사장실이나 대학 본부에서 직접 보관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는 상황이다.

자료실이나 기록관이 설립돼 있으나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할 만한 인력이 부족한 것 또한 문제다. 일례로 지방의 한 국립대는 280여 평의 기록관을, 사서 1명과 일용직 직원 1명이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화역사관은 이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연구원 2명·자료수집 연구원 3명의 인원으로 119년 동안 축적된 이화의 방대한 기록물을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이 뿐만 아니라 각 대학에 세워진 대학기록관은 학생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기록관은 개교 60주년을 앞두고 올해 안에 전시실 마련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이를 알고 있는 학생은 드물다. 실제로 서울대 김세정(인류·2)씨는 “우리 학교에 기록관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 전현정(국문·2)씨는 “이화역사관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방문하거나 열람한 적은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화역사관에 실제 자료 열람을 요청하는 경우도 대학원생과 외부 언론이 대부분이며, 학부생은 드문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이화역사관이 개교 120주년을 기념해 복원되는 이화학당 한옥 교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화학당 한옥 교사는 연면적 297.25평 규모의 지하1층·지상1층 건축물로 현 이화역사관(현재 대학원 별관 1층에 위치)보다 공간이 확대된다. 또 이화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과 보존된 기록물을 찾아 볼 수 있는 열람실을 이화인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이화역사관장 이배용 교수(사학 전공)는 “새로운 홈페이지를 만들고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는 등 이화인들이 쉽게 이화역사관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화역사관은 기록물 관리와 더불어 이화와 우리나라의 근·현대 여성의 역사를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각 대학에서 ‘대학기록관’은 자료실·기록관·역사관 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대학기록관’의 성격을 지닌 이 공간들의 설립 목적은 하나로 통한다. 개교 이래 생성되고 보존된 기록물들이 모여 그 대학의 생동하는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배용 교수의 “이화역사관에 보존되고 전시된 기록물을 통해 이화 역사의 소중함을 알 수 있고, 이를 다음 세대에 넘겨줄 수 있다”는 언급은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미래도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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