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대회는 여자들만의 잔치다? 하지만 제 9차 세계여성학대회에는 18명의 건장한 청년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최종 면접을 거쳐 이번 대회의 자원봉사자로 선발된 사람들을 만나봤다.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연세대 이대아(사회·2)씨. 남녀 구분없이 모두가 똑같은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란다.

▲ 연세대 이대아(사회 2)씨. [사진:신진원 기자]
그는 ‘성과 사회’라는 여성학 수업시간 중 여성학 대회 자원봉사를 권유하는 교수의 말에 왠지 끌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원서를 집어들었다고 한다. 처음 자원봉사를 결정한 이후 친구들은 물론 어머니조차도 “그런 걸 네가 왜 하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그는 그런 반응에 개의치 않았다.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는 다만 강연이 영어라는 점이 애석하단다. “주제가 너무 좋은데 영어 발표네요”라며 “힘쓰는 일이나 해야죠. 뭐”라고 말하는 그의 눈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여성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말했던 것이 남녀차별적 발언이었음을 알고 반성하게 됐다고 한다. “이제는 당연시해왔던 말 한 마디도 다시 생각할 줄 알게 됐기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에도 세심한 신경을 쓰게 된다”는 그는 “하지만 잘못을 아예 모르고 사는 것보다 불편해도 ‘사람’답게 살 수 있어서 좋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여성학 관련 질문을 예상하고 열심히 면접을 준비했는데 정작 처음 받은 질문은 “힘 잘 쓸수 있느냐”인 까닭에 상처받았다며 너스레를 떠는 고려대 이민환(경영·4)씨.

▲ 고려대 이민환(경영 4)씨. [사진:신진원 기자]

그는 여성 유권자 연맹에서 주최하는 ‘영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다가 연맹 관계자의 소개로 이번 대회에서 일하게 됐다.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이것저것 많이 참여한다는 그는 말레이시아 해외 봉사·청소년 경제 교육 멘토링 등 굵직굵직한 경험만 여러 차례인 베테랑 봉사자다. 이민환씨는 이런 경험을 하면서 ‘어느 단체든 리더는 남성이 주로 맡는 것’에 불합리함을 느꼈고 여성학, 그 중에서도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민환씨는 얼마 전 여성신문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한 ‘제 5회 여성마라톤’에도 참가해 여성 권리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여성의 권리는 여성 혼자만이 아니라 같이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과 함께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도 신체적 우위를 내세우며 남성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남자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하는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남녀가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조금 더 가까워지길 꿈꾼다.

서강대 배이갑열(수학·4)씨는 남자로는 드물게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여성학 연계전공자이면서 페미니즘 동아리 ‘이랑’(www.irangirang.net)의 회원인 그도 이번 대회의 자원봉사자다.

평소 워낙 관심이 많은 까닭에 여성학 대회에 관해서는 이미 작년 봄부터 알고 있었다는 배이갑열씨. 교내 양성평등 성 상담실 연구원의 권유로 대회 참여를 결심했다고. 동아리 활동을 통해 혼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여러가지를 배웠다는 그는 “국제적인 포럼이니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그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나의 한계와 부족한 면을 보고싶다”고 대회 참가 이유를 밝힌다.

그는 여성관련 활동을 많이 하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 처음 여성학을 알게 됐다. 이후 책으로만 여성학을 접하다가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게 되면서 현재는 대학원 협동과정을 공부할 생각까지 갖고 있다. “종종 불거지는 소수자 비하발언과 같이 그동안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경험들, 뭔가 잘못됐다는 건 알겠는데도 그게 딱히 어떤 폭력인지 집어낼 수 없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론적으로 알게 되는 게 재밌었다”는 배이갑열씨에게 여성학은 주전공인 수학보다 훨씬 더 사랑스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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