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동화의 편견 털어낸 ‘대안동화’… 우리 풍토에 맞는 창작·보급 필요해

“마침내 아름다운 공주는 마녀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백마탄 왕자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아름답고 얌전한 공주이거나 무섭고 사악한 마녀. 동화 속 여성의 모습은 대체로 둘 중 하나다. 이처럼 상당수의 동화 속 여성들은 수동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우리 학교 김정희 교수(여성학 전공)는 “「인어공주」 속 여성은 자신이 사랑을 할 때에도 인내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진다”고 지적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평생 잠을 자던 공주가 왕자의 키스에 의해 깨어나는 설정 역시 노력없이 행복을 얻으려는 여성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동화를 읽은 아이들은 남녀차별과 같은 편견을 ‘사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된다. 「약이 되는 동화, 독이 되는 동화」(이프,2000)를 쓴 동화연구가 심혜련씨는 “동화는 아이들에게 사회를 인식시키고 역할모델을 제시하는 등 큰 영향력을 지닌다”고 전했다.

동화 속 잘못된 편견에 대한 본격적인 우려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 무렵. 당시 서구에서 일어난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다음 세대의 교육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고, 여기서 탄생된 것이 바로 ‘대안동화’다. ‘대안동화’란, 잘못된 편견에서 벗어나 주로 양성평등이나 성역할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동화를 말한다.

대안동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윌리엄의 인형」에는 기차놀이·농구보다 인형에게 우유를 먹여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윌리엄’이라는 남자아이가 등장한다. 더불어 「아빠사자와 행복한 아이들」에서는 ‘전업주부’ 아빠사자와 ‘유능한 직장 상사’인 엄마사자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 대안동화 <종이 봉지 공주>의 삽화. [이미지제공:비룡소]
한편 「종이 봉지 공주」 속 공주는 용의 습격으로 다 타버린 드레스 대신 종이봉지로 옷을 만들어 입고 용을 무찔러, 납치돼있던 왕자를 구할 정도로 용감한 여성이다. 심지어 왕자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다시 드레스를 입으라고 명령하자, 멍청한 왕자와의 결혼을 거부하고는 그를 떠난다. 이밖에 이전 동화에서 마녀와 할머니를 부정적으로 그리던 것과 달리 이들을 현명하고 활기차게 그린 동화들도 상당수 출간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문화운동단체인 ‘또 하나의 문화(또문)’가 85년 발간한 동인지에서 ‘동화 속의 편견’이란 주제를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대안동화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또문’의 발기인인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사회학 전공)는 “당시 대안동화에 관심있는 주부들을 중심으로 대안동화를 읽고, 직접 창작한 작품을 자체 출판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후 대안동화 창작은 물론 대안동화 읽기운동과 같은 적극적인 움직임은 우리 사회에서 거의 사라진 상태다. 연구집으로 「성평등 대안동화 개발에 관한 연구」를 낸 한국여성개발원 김홍숙 연구원은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남녀차별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편견을 바꾸려는 대안동화에 대한 관심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머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현재 출판되고 있는 대안동화의 대부분이 서구의 작품으로 우리의 정서를 담은 대안동화는 여전히 드문 실정이다. 이에 대해 김정희 교수는 “제주도를 만든 할머니를 다룬 ‘설문대할망’와 같은 우리 전통 설화의 경우,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다룬 훌륭한 대안동화로 충분히 각색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독자들이 대안동화를 선별해 읽도록 도와주는 체계 역시 전무하다. 이는 한해 출간된 동화에 성차별·인종차별·노인차별 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독자들이 좀 더 쉽게 대안동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할 때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기존 동화의 문제점을 고민하는 동화작가들이 많아지는 동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안동화를 출간하는 출판사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페미니즘 시각에서 본 그림동화」라는 논문을 발표한 동덕여대 송희영 교수(독일어 전공)는 “아이들 스스로가 기존동화를 뒤집어 대안동화를 창작해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김홍숙 연구원은 “양성평등 등의 메시지 전달 뿐 아니라 짜임새 있는 흐름과 다채로운 삽화를 통해 아이들의 미적 감수성을 발달시키는 것 역시 대안동화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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