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화 교수(영어영문학 전공)

E에게

죽은 단어들. 죽은 언어.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해. 시간의 기억 속에 묻혀있다. 사용되지 않았다. 말해지지 않았다. 역사. 과거. 9일 낮과 9일 밤을 기다리는 어머니 말하는 여자를 찾아내도록 하라. 기억을 회복시켜라. 딸인 말하는 여자로 하여금 땅 밑으로부터 나타날 때마다 샘을 회복시키도록 하라. 잉크는 마르기 전에 쓰기를 다 마치기 전에 가장 진하게 흐른다.

테레사 학경 차의 「딕테」를 읽으며 ‘말하는 여자’를 생각합니다. 사용하지 않아 죽어버린 언어를, 말할 수 없어 잊혀진 기억을, 산 채로 매장된 채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역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기억나게 할 수 있는 재생시킬 수 있는 ‘말하는 여자’.

우리는 ‘여성과 문학’ 수업을 통해 ‘말하는 여자’를 찾아 영문학 속으로 함께 들어갑니다. 제인 에어가 그토록 사랑하는 남자에게 “내가 가난하고 눈에 띄지 않고 못생기고 작다고 해서 영혼도 없고 마음도 없는 줄 아시나요? 틀렸어요. 나는 당신과 똑같은 영혼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선언할 때, 그녀는 말을 시작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자들은 지난 수세기 내내 남자의 모습을 원래 크기의 두 배로 비춰주는 마술적이고 멋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울로 봉사해왔다”라고 지적했을 때, 그 거울은 산산조각나기 시작합니다.

샬롯 퍼킨스 길만의 여주인공이 자신을 가두는 벽지를 뚫고 나와 “나는 마침내 나왔어요… 벽지를 거의 다 뜯어내었으니, 이제 당신은 나를 다시 가둘 수 없어요”라고 미쳐서 소리칠 때, 그녀는 땅 속에서 솟아 오른 분수처럼 솟구칩니다.

동방예의지국의 여자들이 버릇없게도 말을 시작한 것은 이화가 세워진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의 여자들에게 교육을 통해 빛을 전하려했던 이화 설립자들의 뜻은 지금도 이화 곳곳에 생동하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 교수님들의 연구와 학생들의 배움 속에, 한국여성연구원과 아시아여성학센터와 같은 연구 기관 속에,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세계여성학대회를 준비하는 숨결 속에 약동하고 있습니다.

‘말하는 여자’들이 세계에서 이화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죽은 언어를 살려내고 매장되어 있는 역사를 재생시키고 생명의 샘물을 다시 흐르게 하고자 달려오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되어 그동안 해 온 연구와 실행과 비전을 뜨거운 태양볕 아래 쏟아놓을 여성들은 시원한 분수를 뿜어 대지를 지구를 적실 것입니다.

우리도 ‘말하는 여자’가 되어 거기 그 곳에 함께 서고 싶습니다. 마르기 전에 다 쓰여지기 전에 가장 진한 잉크처럼 함께 진하게 흐르고 싶습니다.

◆필자 소개
저는 한국여성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오정화 교수입니다. 주로 ‘여성주의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죠. 브론테 자매처럼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19세기 영국 여성작가들에 대해 살펴보고, 다양한 문학작품의 여성주의적으로 비평하는 것이 제 연구의 주된 내용입니다. 한국여성연구원은 오는 5월, 연변에서 북한·중국 학자들과 함께 ‘북경대회 이후 여성 지위의 변화’를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를 열 예정입니다.
다음 편지는 여성철학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이번 대회 총괄 기획위원장이신 이상화 교수님(철학 전공)께서 써주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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