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사랑, 데이트 성폭력

“날 못 믿는거야?”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날 사랑한다면 걱정마”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성관계를 요구한다. 여자는 남자친구를 사랑하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의 표현일 뿐”이라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결국 성관계를 허락한다.

이는 연인들 사이에서 종종 일어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신은 이것이 ‘데이트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데이트성폭력은 데이트 중 자신의 동의 없이 상대가 성적인 언어·접촉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 받았을 때 데이트성폭력을 당했다고 말한다.

우리 학교 성희롱상담실 고경희 상담원은 “남성들은 데이트를 성적인 부분도 허락받은 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뭐든지 가능하다’는 인식은 잘못된 생각이다. 애정표현으로 착각하고 한 행동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된다면 그것은 사랑을 가장한 성폭력이 된다. 설사 이미 성관계를 가진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가 계속 성관계를 요구한다면 그 또한 데이트성폭력이 될 수 있다. 현재 자신의 상태·감정을 상대방이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데이트성폭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성다움·여성다움과 관련한 성별 고정관념 때문에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방적인 성행위가 애정 표현과 혼동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트성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성관계 요구를 받으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Yes’나 ‘No’라는 의사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성행위 기준·한계에 대해 사전에 생각해본 적이 없어 성적인 대화에서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남성은 여성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단지 ‘부끄러워서’ 혹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색해서’ 등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한다. 심지어 여성의 ‘No’를‘Yes’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성관계를 결혼관계 내에서만 한정하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는 사랑 표현 방법의 하나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성관계는 개인의 선택 문제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이런 생각은 사회적으로 자유로운 남성들에게 더 빠르게 받아들여졌다. 반면 여성들은 여전히 순결이라는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나지 못해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남녀는 서로의 가치관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만약 성관계를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화를 낸다면 그 사람이 나의 생각을 존중하고 있는지 여부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데이트성폭력은 ‘일방적 성행위도 사랑의 정당한 표현’이라고 착각하는 한 쪽의 생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 당사자도‘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거야’ 라고 넘어가고 이것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해 피해가 지속될 수 있다.

고경희 상담원은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자신의 성적 의사 결정 능력을 길러야 한다” 며 ‘아니야’· ‘오늘은 내 기분이 원하지 않아’ 등 나만의 표현 방식을 갖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자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상대에게 표현할 정도가 돼야 하고, 그 표현을 받아주는 관계야 말로 건강한 남녀사이이기 때문이다.

일반 남녀와 연인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스킨쉽 허용 여부다. 연인사이의 고유영역이라 할 수 있는 성관계는 그들의 사랑을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데이트성폭력을 당한 후 가장 힘든 점은 ‘나는 존중받지 못했다’는 허탈감과 배신감이다”라는 고경희 상담원의 말처럼 서로의 동의 없이는 사랑도 폭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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