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미세스 C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렇게 버튼을 옮겨놓으라고 말했는데 너는 왜 그렇게 기억력이 나쁘냐, 너 때문에 머리가 엉망이 됐다는 이야기 끝에 미세스 C는 욕실에 대한 결론을 지었다.
“From now on, you can’t take a shower in my house. You should take a bath. That’s all. No shower. ”
화장실로 데려가서 욕조 물까지 틀어주곤 나갔다. 미세스 C의 욕실에서 샤워기는 고정돼 있었고 바가지조차 없었다. 기분이 엉망인 채로 대충 씻고 나오자 미세스 C는 물었다.
“How’s your shower?”
“Well, it’s little difficult for me to wash my hair.”
“Why don’t you knee in the bath tub?”
자신도 꿇을 수 있는데 왜 너는 못하냐고 그녀는 말했다. 관절염으로 고생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녀가 욕조에 앉아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감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한 무릎을 꿇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거대한 샤워기 뒤에 미세스 C가 서 있는 망상. 그것은 샤워기가 아니라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복종은 죽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입에 떨어지지 않는 말을 했는데,
“Would you give me another chance?”
대답은 “No”였다. 덧붙여 그녀는 내가 ‘responsible’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너를 집에 둘 수 없다고 했다. 또 여기에 너를 영원히 둘 생각이 결코 없다고도 했다.

그날 아침부터 집을 찾아 몬트리올의 다운타운- 쌩 꺄뜨린 거리를 다니기 시작했다.
Mcgill 대학과 Concordia대학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여러 종류의 옷을 살 수 있는 쇼핑몰들이 즐비해있는 다운타운은 서울로 치면 신촌과 명동을 합쳐놓은 듯한 분위기다. 눈에 띄는 특징은 불어권이라, 거리 이름이 street가 아니라 rue라고 표시돼 있고, S표지판이 top이 아니라 Arret라고 쓰여있다는 것.
다운타운에는 한국인들이 많았고 나 또한 우연히 한국인 가게에서 일하는 유학생 K를 만날 수 있었다. K는 다운타운의 곳곳을 잘 알고 있었고 혼자 다니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K와 같이 지내는 것은 가볍고 유쾌했다. K와 친하게 지내면 많은 도움을 받고 어쩌면 집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K와 같이 돌아다니다 보니 내가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했고 외로웠는지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분명한 사실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었다.
K와 사귄다면 나는 좀더 쉽게 몬트리올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고, 혼자 해내기 어려운 것들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꿈꿔왔던, 캐나다 문화에 할 수 있는한 깊숙히 빠져들고자 했던 유학생활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서 연애를 하는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을 만나고 사귀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한국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돌아가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많은 기회가 열려있지 않은가. 다운타운에는 나를 포함한 외로운 유학생들이 항상 가득하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회의도 든다. 굳이 외국에까지 나와서 아는 한국인을 많이 만들고 돌아가야 할까? 캐나다에 온 유학생들 중에는 현지 교포들이 다니는 한인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타지에 혼자 버려진 것과 다름없는 상황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기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에서도 잘 다니지 않던 교회를 다녀야 할까. 거기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게 내가 꿈꿔온 유학생활인 걸까?

K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 몸과 마음이 한없이 지쳐있었다.
집에 오자 미세스 C는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요전에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미안한 눈치였다. 그녀는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If you leave, I’ll miss you. You know, I don’t have this kind of company before long.”

기대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외로운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미세스 C가 잘 대해준적도 있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미세스 C는 가끔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또 그동안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대화를 하면서 분명한 발음과 단어들도 익혔다. 또한 “Speak louder”라고 다그쳐준 덕분에 그동안 어느 정도 크게 말하는 습관도 생겼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실제로 홈스테이는 식사 포함해서 700불이 기본이지만 나의 경우 식사를 제외하고 운 좋게 300불에 살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한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오전 수업이라도 있는 날에는 6시30분에 집에서 나가야 한다. 또 무엇보다 일어선 채로 샤워를 하고 싶다.

다운타운에 나가서 사는 것은 어떨까.
학기가 시작하기 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생각보다 집들은 꽤 있었다. 혼자 사는 원룸의 가격은 550~600달러였다. Under the table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껴서 살면 유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살고 있는 300달러에 비하면 훨씬 비쌌다.
하지만 학교 가까이에 살 수 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제대로된 캐나다의 문화를(특히 밤문화를) 즐길 수 있다. 영하 40도를 달리는 추운 몬트리올 겨울을 나기도 훨씬 편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뭔가 준비가 덜 된 느낌이다. 겁이 난다.


가장 좋은 것은 하루빨리 학교가 시작해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같이 룸메이트로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호그와트’가 개강하기까진 멀었고 ‘론’과 ‘헤르미온느’를 만나지도 못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사람이 그리웠다. 그리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이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떠돌지도 못하는 부초와 같은 삶은 싫다. 차라리 떠나자. 다음날 아침 나는 짐을 싸서 오타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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