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min!”
미세스 C가 나를 부르는 소리다.
두려움을 누르고 그녀가 있는 욕실로 향한다. 문 앞에서 미세스 C가 둘째 손가락을 까닥까닥하고 있다. 잔뜩 주름진 얼굴에는 노여움과 근엄함이 동시에 서려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자 미세스 C가 한숨을 쉬며 설명을 시작한다. 세수를 하고 나서 세면대 주변을 닦지 않았다는 거다. “I’m sorry I’m so sorry”를 연발하며 수건을 집어들자, 미세스 C가 묻는다.
“Do you have a maid in your house?”
“No."
“Who did that for you?”
한국에서는 세면대를 잘 닦지 않는 거 같다고 하자, 그럴리가 없단다.
“Well.. maybe.. my mother?”
순간, 미세스 C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
“Your mother must be have a hard time.”
“너네 엄마는 참 힘들었겠구나” 라는 때 아닌 동정 어린 말에는 '너네 집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더냐'는 이런 숨은 뜻이 있는 거다.


이것이 몬트리올에 온지 2주째 된 나의 삶이다.
보통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가면 처음에는 다들 학원이나 대학에 있는 기숙사에 묵거나, ‘홈스테이’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국에서부터 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해서 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는 사람 중에 한국에서 미리 계약을 하고 온 경우가 있었는데, 도착한 첫날 밤 12시 가까이 되어서 집에 도착해보니 전혀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계약할 당시에는 바로 들어와서 살아도 된다고 했다는데, 막상 와서 보니 한창 공사 중이었다고. 게다가 돈도 환불해주지 않았다.

나의 경우 규모가 작은 학교라 기숙사라고 할 만한 게 없었고, 그래서 홈스테이로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홈스테이가 이처럼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것이 홈스테이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은 금상첨화인데, 초기에 가족과 쉽게 융화될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그 나라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가를 아이와 함께 지내며 여과 없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북돋워 주는 분위기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일흔 아홉의 무척 깐깐하고 매정한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나의 경우는 달랐다. 도착한지 며칠 안된 날 미세스 C는 이렇게 말했다.
“Your English is broken. It’s so broken.”
나의 영어가 썩 유창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도마를 ‘cutting board’라고 한다던가 선반을 ‘cupboard’라고 쓴다는 것은 살아본 사람 말고는 알기 어렵지 않을까?
또 여행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자신의 언어를 배우려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기특’하게 여겼고, 사기를 북돋워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미세스 C는 달랐다. 미세스 C의 경우, 화제를 바꿔보고자 내가 “Can you speak French well?” 라고 묻자(몬트리올은 불어가 제1언어인 도시다.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를 할 줄 알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No~ no~ My french is broken just like your English”

이런 미세스 C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텔레비전, 월마트 그리고 바로 욕실이다.(앞의 둘은 차차 이야기하자) 캐나다의 욕실은 한국의 욕실과는 사뭇 다르다. 미세스 C의 집과 한국의 집을 비교해 보자면, 한국 집은 하수구가 욕조 바깥에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샤워 커튼을 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캐나다의 경우 하수구가 욕조 안에만 있기 때문에 샤워하기 전에는 반드시 커튼을 쳐야 한다. 샤워를 할 때에는 욕조 이외의 바닥에 물이 튀기면 안 된다. 물이 바닥에 스며들어 지하실 천장에까지 스미기 때문이다. 또한 샤워를 마친 이후에는 벽에 물때가 끼지 않게 하기 위해, 물수건으로 욕조를 둘러싼 벽까지 다 닦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샤워호스 쪽으로 돌려져 있는 버튼을 아래 쪽에 있는 수도꼭지로 변환해 놓아야 한다. 이것이 미세스 C의 욕실 법칙이었다.

20분 정도 샤워를 하고나면 그만큼 화장실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화장실에 머리카락이 빠지지는 않았는지, 벽에 물방울이 튀진 않았는지, 바닥에 물이 흥건하지는 않은지, 물은 꽉 잠겼는지. 샤워호스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서 아침에 열심히 드라이한 자신의 머리 모양이 망가졌다고 미세스 C가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기 때문에 늘 마음이 불안했다.
이렇게 일주일 째 살다 보니 나중에는 샤워를 하는 것인지 화장실을 샤워시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샤워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스트레스가 될 만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는데, 바로 전날 샤워를 하고 나서 샤워호스 쪽으로 옮겨져 있는 버튼을 아래쪽에 있는 수도꼭지 쪽으로 옮겨놓는 것을 깜박 한 것이다.

그 다음 날 아침, 내가 아직 잠을 자고 있던 그 시간, 미세스 C는 고개를 숙여 수도 꼭지를 틀었고, 불행히도 물은 수도꼭지가 아니라 샤워 호스에서 쏟아졌다.
미세스 C가 물벼락을 맞게 된 것이다.
미장원에 갔다온지 얼마 안돼, 유난히 신경써서 손질한 그 머리가 말이다.

사건의 규모만큼 미세스 C의 분노는 컸고, 그 결과는 더욱 가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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