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나 안그래~” 이대역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잠시 멈칫하고 지하철 안을 둘러보니, 큰 목소리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홈쇼핑 쇼 호스트 같은 말투와 큰 성량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는 유독 더 크게 들렸다.

게다가 끊임없이 눈웃음 치던 그 표정은 그녀에게만 보이는 투명인간과 대화를 하고 있는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해 보였다.

당시 내 눈에 비친 그녀는 공공장소에서의 기본적인 매너조차 모르는‘이상한 여자’에 불과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흐르고 신촌의 한 마트에 가서 장을 보던 중,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귓바퀴로 흘러들어와 머리 속을 관통했다.

“XX 세일합니다~. 사은품도 받아가세요~.”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가 며칠 전 지하철에서의 그 목소리라는 것을. 다시 마주친 그녀는 지하철에서 불손하게만 느껴졌던 그 큰 목소리로 쉬지않고 상품 홍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야릇하게만 보였던 그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상품을 권하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이상한 여자’는 분명 마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 외판원과 동일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시끌벅적한 마트 안에서 음악소리나 다른 외판원들의 홍보 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그녀는 점점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했고 호객을 위해 항상 웃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리고 내가 지하철에서 의아해했던 그녀의 모습은 어찌보면 치열한 일터에서 몸에 밴 습관이었을지도 모른다.

순간 지하철에서 몇 분간 관찰한 것 만으로 내 머리 속에 정의해버린 ‘이상한 여자’는 산산조각 났고, 그 파편들이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게 내 마음 속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찰나의 순간들을 나도 모르게 독단과 독선으로 채워나가고 있었던건 아닐까.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정과 사연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보여지는 사실들만 갖고서 제멋대로 대상을 파악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순간들은 그냥 그렇게 왜곡된 채로 잊혀져 갔을 것이다.

요란스런 차림새를 하고 있다던가, 뜬금없이 노래를 흥얼거린다던가,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누군가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왜저래? 이상해’라는 말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겉보기가 자기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그들 각자의 진짜 모습에서 왜곡된 채 각인되어 가고 있을 것이다.

스쳐가듯 단편적인 순간에 마주친 사람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우린 끊임없이 어떤 평가를 내리려고 한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만 바라보고 내리는 판단은 오히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내리는 판단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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