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18일(수) 오후12시 일본대사관과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300차 수요시위’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민 학생들이 참여한 자리였다.

? “일본정부는 공식 사죄·배상하라”“한국정부는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라”“‘상노예제도’를 뒷받침하는 ‘남성패권주의’물러가라” ? 92년1월8일 첫 수요시위 때 할머니들만의 외로운 외침이었던 이 구호들이 이제는 연령·종교를 초월해 한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수년째 일장기만 무심히 날리고 있는 저 말없는 일본대사관을 향해. ? 같은 시각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당시 위안소에서 통용됐던 ‘돈’과‘콘돔’등 유물·유품의 전시전은 ‘일상’으로만 치닫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 낡은 위안소 건물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앳된 소녀의 모습을 담은 정신대만행 사진전. 그 속에는 일본군 ‘성노예’로 꽃다운 청춘을 짓밟히고 평생을 치욕 속에 살다간 할머니들의 왜곡된 삶이 그대로 투영돼 있었다.

? “위안부 할머니는 제 할머니와 다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어요. 근데 막상 할머니를 뵈니 우리 할머니랑 다를게 하나도 없더라구요” ? 이날 수요시위에 처음 참가했다는 어느 고등학생의 이 수줍은 고백은 바로 ‘위안부’문제를 바라보는 ‘오늘’의 우리를 비쳐주는 거울은 아닐런지... ? 그리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따뜻한 눈망울은 ‘내일’을 말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아픔과 한이 단순히 연민의 차원을 넘어 곧 ‘나의 아픔’으로 자리잡을 때, 이 땅의 절반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김없이 강요당하는 ‘성노예’의 굴레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다고. 여성의 인권유린을 정당화시키는 남성중심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근본적인 투쟁 없이는 누구도 제2, 제3의 위안부를 비껴갈 수는 없다고. ? 50여년의 세월 동안 일본도, 한국도 변한 것이 없건만 ‘위안부’ 할머니들만 한분씩 우리의 곁에서 사라져갔다.

? 그러나 “우리가 늙고 병들어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해도 우리의 ‘딸’과 ‘손녀’들이 살아있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어느 할머니의 외침은 사람들의 가슴에 ‘싹’을 틔운다.

희망이라는 ‘씨앗’으로... ? 가냘픈 주먹을 불끈 쥐시는 할머니 머리 위로 ‘세상 살아 가는 동안에도 우리가 먼저 죽는다 해도 그 뜻은 반드시 이루리라 승리하리라...’의 ‘동지가’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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