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춥지 않으세요?" 비가 오던 저녁 녘, 우산까지 받쳐 들고 나타난 그 사람에게 난 동정어린 말을 건넸다.

희끗하고 야성미 넘치는 단발머리와 투박한 외모가 작곡가 베토벤과 닮았다는 이유로 이화인들 사이에서 일명‘베토벤’으로 통하는 그는 내 질문에 그저 손만 내저으며 대답을 회피해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서점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기억하세여?” 베토벤은 반가운 듯 안사하며 기억한다고 했다.

신이 난 나는 그에 관한 숱한 소문의 진상을 알고 싶어져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부터 그를 취재하기 위한 경쟁은 숱하게 이뤄져왔으나 지면화된 적은 없었기에 아예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금 바쁘니 다음으로 미루자는 말을 반복했다.

그의 위회적 거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문대로 그가 정말 장의사인지, 매일 저렇게 서있는 이유가 사랑하느 ㄴ여인을 기다리기 위한 것인지 등의 진위가 궁금해서 연락을 계속 취했다.

삼고초려일까? 세번째 접촉이 이뤄졌다.

그도 역시 자기와 관련된 소문이 어떤 것들인지 궁금해했다.

내가 있는 그래도 말해주자 그는 그런 말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으며 자신에 관한 얘기를 조금씩 털어놓았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느낀 것은 대다수 이화인들이 생각하듯 그가 단순히 정신병자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투나 내용으로 보아 그는 상당히 예의바르고 꽤 학식을 갖춘 사람이었으며 일정한 직업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학교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는 것이나 외모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는 손가방으로 얼굴을 가리는 버릇에서도 알수 있듯이 타인에게 비방당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실제로 협박당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특정인을 해치려고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그에게‘무고죄’를 적용할 수 있는 근거라고는 그가 늘 같은 자리에 서있다는 사시로가 그로 인한 불쾌감일 뿐이다.

또한 개인의 사생활 폭로를 특종감으로 생각하거나 호기심 차원에서 접근하는 취재기자들도 그에게 대인기피증을 갖도록 부추기는 요인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호기심에서 출발했지만 정보제공을 할 요량으로 어쩌면 평범한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만 취재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에 관한 자료 수집 중에 우연히 그를 취재해 본 경험이 있다는 기자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그 역시 베토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더불어 ‘베토벤이 잘 생기고 젊은 대학생 또래의 남자였다면 과연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부러워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신병자라고 치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한 사람에 대한 의혹과 편향된 생각들이 그의 본질과는 왜곡된 새로운 상을 만들어낸 셈이다.

우리학교 앞의 ‘광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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