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랑 한 번도 못해 봤다.

4학년인데…’ 우리학교 도서관 화장실 벽에 씌여진 낙서 한 구절이다.

옆 칸으로 옮겨보자. ‘sex로서 사랑을 느낀다… 어떤지 모르겠지만 sex 후 우린 더 가까워 졌으며 … 그의 동정과 바꾼 처녀성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나도 동감이다.

sex에 대해 자유로운 게 좋다고 생각한다.

’→ ‘지금가지 우리는 sex에 대해 부정적이 수 밖에 없도록 교육 받아온 것이지 sex의 본질은 사랑의 행위이다’ 이 밖에 등록금 삭감 투쟁에 대한 회의, 다각형의 연애 역학 구조도, 졸업생이 후배에게 띄우는 메시지까지….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쭈글 썼는지 대부분 자유분방한(?) 글씨체지만 내용만큼은 다양하고 진지하다.

이렇듯 화장실 벽은 잦은 업데이트 횟수를 자랑하며 이화인의 익명게시판 노릇을 톡톡히해내고 있다.

한편, 정작 우리 학교의 게시판은 어떠한가? 얼마 전 음대교수 주차권 논란, 사제간 동거설 등 자유게시판의 글들이 학내에 이슈화될 만큼 파급효과가 큰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공공의 게시판을 일기장으로 착각, 욕서이나 험담을 해오던 일부 몰지가간 학생들 덕분에 학교 게시판은 이제 실명제라는 꼬리표를 달고 ‘부자유 게시판’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익명으로나마 학교에 대한 부란이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여지가 한풀 꺾이게 되자 순식간에 그곳은 벼룩시장이나 아르바이트 알선업 등 상거래 장으로서의 업종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익명 게시판의 한계때문에 게시판의 원래 목적인 자유로운 언로마저 침해하는 거슨 본말전도이다.

예를 들어 고려대의 경우, 자유/교우 게시판, ‘칭찬합시다’로 그 성격을 구분, 학생의 요구를 수용하고 이를 학내 문화로 자리잡게 하려는 학교측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자유게시판에 가끔씩 ‘영원한 맞수’인 연세대와의 학벌 경쟁을 부추기는 익명의 글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칭찬합시다’처럼 교우나 학교 식당 아주머니를 칭찬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익명의 한계를 인정하고 성숙된 공론장을 이끌어낸 성공적인 사례라 하겠다.

과연 자유게시판의 익명성이 오용된다고 해서 실명으로 전환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가뜩이나 명예와 이름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실명을 걸고 잘못 말했다가 매장당하기 쉽상이다.

즉, 익명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갓 성인으로 태어난 대학인의 관심사, 특히 성(性)과 사랑, 사회 저항론들이 여과 없이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화장실 낙서로 돌아가 보자. 화장실 낙서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동안 사회적 지위, 신분 때문에 입에 담지 못했던 음담패설, 고민 등을 타인에게 고백함으로써 배설욕을 충족하고 이를 보는 이에게는 관음증적 욕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익명성이 숱한 낙서들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유게시판 역시 익명을 보장받는 만큼 다양한 비판과 토론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오늘도 자유게시판을 찾고 실망한 한 이화인이 펜을 들고 도서관 화장실을 찾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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