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마지막을 하루 남겨둔 정오의 버스 안. 따갑게 내리 쬐는 햇볕과 후끈 거리는 오후의 열기속에 승객들을 침묵을 지키며 짜증이 난다는 표정이다.

승객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였을까? 기사 아저씨가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송자 교육부 장관이 오늘 사표를 제출했습니다’“드디어 사표 냈구먼, 자기 배 채우자고 사외이사가 주식을 투자했다더니 당연히 사표감이지”머리가 희끗 희끗 하신 노신사는 정말 통쾌한 소식이라는 듯 언성을 높여가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나는 왜 이 뉴스를 들으며 더욱 짜증이 나는 것일까?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 고위직 인사가 사표를 제출하고 물러난다면 이는 당연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송자 전장관의 부도덕한 행위는 왜 그가 교육부 장관이 돼 시민단체의 집중을 받고서야 비로소 비판 받는 것일까? 삼성전자의 사외이사였던 그가 삼성전자의 실권 주를 싼 값에 인수해 16억원 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세 차익을 올렸다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기업을 경영·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로서는 본분을 망각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법에는 이러한 행위를 단속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미비한 처벌조차 할 수 없다니. 처벌 할 법령이 없다는 것은 이러한 문제의 발생을 예측하지 못해서였을까. 얼마전 발표된 ‘자금 세탁 방지법’ 초안에 정치자금 세탁에 대한 조항이 빠진 것처럼 일부러 그 누군가의 안전한 도주는 위해 도주로를 뚫어 놓은 것은 아닐지. ‘법은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세는 가혹하다’는 말리 새삼 떠오른다.

얼마전 나는 두분의 사법비리 피해자를 만나게 됐다.

만화가인 남편이 그린 그림책의 저작권을 마음대로 이용한 출판사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경란씨. 그리고 건축업자 등의 사기 행각으로 인해 1억 5천만원을 손해보고도 가해자로 몰린 이산해씨. 이산해시늬 경우는 건축허가서가 위조됐음이 명배하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를 수사 자료로 이용하지도 않고 수사과정에서도 건축업자의 손만 들어주는 기막힌 상황에 놓여있다.

문제를 올바르개 해결할 법이 있어도 이들의 손을 들어줄 법조인이 없는 것이다.

두분은 성치 않은 몸을 이끌며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만한 사람들을 찾아 사방팔방을 헤메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나마 두분의 노력으로 인해 지방신문이나 대학신문, 시민단체 신문 등에 사연이 실리며 두분의 억울한 사연이 실리며 두분의 억울한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두분의 경우는 상황이 좋은 편인다.

두 분다 대학공부까지 마쳐 그나마 법에 대해 공부 할 수 있었고 자신들을 대변할만한 논리를 만들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법에 대해 알지 못하고 공부 할 수도 없는 수 많은 서민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조차없다.

힘 있는 사람은 범죄를 저질러도 쉽게 빠져나가고 힘 없는 사람은 사기를 당해도 가해자가 되는 우리 나리의 법. 그리고 법대로 처벌하지 않은 법조인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에는 수 많은 송자 전장관과 수 많은 김경란, 이산해시가 생겨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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