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었죠? 처리해야 할 일들이 갑자기 늘어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어”‘서울여성의전화’에서 일하는 이문자씨의 숨가쁜 첫마디에선 현장에서 몸소 활동하는 사회복지사인 동시에 본교 사회복지대학원의 늦깍이 학생이기도 한 바쁜 일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했다.

‘여성의 전화’에서 40대의 늦은 나이에 상담일을 시작하며 ‘가정폭력’문제의 심각함을 몸소 체험했다는 이문자씨는 ‘가정폭력’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뿌리깊은 가부장적 문화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며 할 말이 많은 듯 이야기를 꺼낸다.

“가정폭력의 대표적인 예인 아내구타의 경우 통념상 고학력자에겐 적용되지 않는 것 같죠?”라고 화두를 던지는 이문자씨. 가부장제 사회속에서 남성적인 것의 상징인 ‘힘의 과시’가 가정에서는 아내구타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것은 개인의 직종이나 학력과는 관계없는 일이란다.

그 단호한 음성의 이야기에서 ‘나름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가부장적 사회구조속에서는 ‘심리적으로 매맞는 아내’임을 깨달았다’라고 말하던 어느 ‘여성의 전화’자원봉사자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고 ‘폭력’은 여성전체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음이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성 혹은 가부장제의 각본’에 따라 똑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도 ‘한국여성의 전화’가 앞장서 가정 내 폭력문제를 사회에 이슈화하려 했던 노력이 ‘가정폭력 방지법’의 결실로 나타난 사실은 뿌듯함과 동시에 희망을 안겨준다고. “굳이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떤 사안을 ‘법’으로 제도화했다는 것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공론화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냐”고 반문하는 이문자씨는 “물론 사람들의 의식이 따르지 않은 채로 법안만 통과된 감은 없지 않아요. 그런 만큼 사법부나 경찰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등 계속된 의식화의 노력이 필요하겠죠”라며 빙그레 웃는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여성들에게 개인적인 측면의 도움을 제공하는 상담원으로 활동해온 이문자씨는 이론적 체계, 특히 ‘조직론’부분을 보강할 필요성을 느껴 다시 공부할 결심을 했지만 훌륭한 복지이론 역시 실제적인 경험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이화인들과 함께 듣는 학부과정 수업에서는 나름대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자신의 생각을 똑똑하게 표현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지만 때때로 여성들이 겪는 ‘폭력’의 문제를 자신들과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단다.

“이화인들은 어느 정도 기득권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 만큼 이론적인 부분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가 얼마나 산적해 있는지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는 이문자씨는 이화인들이 이론만을 앞세워 ‘여성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에서의 여성문제 해결에도 동참해 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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