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방원은 백성들의 고충을 돌아보기 위해 궁궐 안에 신문고를 만들어 놓고 ㄴ구든지 이를 두드려 억울함을 호소하면 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왕과 궁을 우러러보던 백성들은 감히 궁안에 발을 들여 놓는 것조차 두려워했고 ‘왕의 업적’이라며 역사에 기록된 신문고는 후세까지 ‘이름’만 빛났다.

그리고 1998년 대한민국, 김대중대통령은 국정상황을 알리고 시민들의 답답함을 해소해 주겠노라고 ‘국민과의 대화’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듯 뜻깊게 마련한 자리에서 국민들은 정부의 정책과 계획을, 정부는국민의 노고와 불만을 얼마나 많이 자세히 알고 돌아갔는가. 1월에 이어 10일(일)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 대해 한국노총·민주노총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재벌·정치권 개혁의 방법·일정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던 점과 비실질적인 실업대책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재벌개혁이 이뤄지고 있는 양 조금만 참고 서로서로 양보하면 1년안에 아이엠에프를 졸업할 수 잇다는 격려와 권고, 정부와 국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일깨우는 감동어린(?) 연설, 시종일관 자신감으로 점철된 지도자의 위풍당당함..., 아마 많은 시민들이 별 대책없는 ‘대화’를 통해 ‘막연한’희망의 약기운으로 ‘불굴의 인내심’을 재정비한 것이 사실일 게다.

국민의 불만을 풀어주겠다고 나선 정부가 한 말은 고작 조금만 더 고통분담하며 기다리자는, 그 말이었다.

게다가 티비속에서는 ‘국민’과 대화까지 한다는 ‘국민의 정부’가 정작 티비밖에서는 집이 없어 소외되고 용역깡패의 화풀이에 두개골이 깨지는 사람들을 방관, 아니 외면하고 잇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발 내 말 좀 들어보라고 구청으로 처오아대로 찾아다니던 철거민들이 정부와 ‘대화’를 나누기는 커녕‘공무집행 방해죄’로 붙들려 갔으니 국민의 소리를 듣고 싶다는 정부의 말이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시작할 때 취지가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이생방송 티비 정치쇼가 이미 두차례나 치뤄진 지금, 진정 ‘국민과의’대화였는지 ‘국민을 향한 ’뜬구름잡는 호소였는지 곱씹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과 함께하겠다는 대화의 마당이 구체적인 정책 입안보다 보여주기식 이벤트 사업에 치중하는 약삭바른 역대 정권의 발자취에 동참하는 결과를 초래해선 안될 것이다.

역사 속에 또다시 ‘듯만 좋았던 신문고’의 오점을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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