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범민족대회에 대한 강격진압으로 인해 발생한 ‘연세대 사태’로 떠들썩 했던 96년 여름, 마침 가족과 함께 그에 대한 뉴스를 볼 기회가 있었다.

“언니, 한총련이 폭력집단이야?”라고 묻는 철없는 동생에게 학생들이 무엇을 위해 연세대에 모인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이야기를 채 들어보지도 않으시고 “시키지도 않는 짓, 하지말라는 짓을 왜 해!”라며 대뜸 꾸짖으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나의 말문은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도 학생들은 거리로, 학교로, 또는 어딘가로 모여들고 있다.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라는 새 정권이 들어섰으나, 학생들은 여전히 내가 1학년때 봐온 그 모습 그대로 거리에서 주먹을 움켜쥐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취재를 하며 오다 가다 만난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지 간에 80년대 당시의 학생운동에 대해서는 그 역할과 성과에 대해 바람직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러나 90년대의 학생운동에 대해선 대부분이 눈살을찌푸리는 것을 시작으로 그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곤 햇다.

학생들의 시위로 교통이 마비왜 오늘은 수익을 못 올렸다는 택시운전사의 투덜거림이나, 학생들이 ‘개입’돼 노동절 집회가 폭력시위로 번졌다고만 이야기하는 정부의 목소리가 학생들에게 시키지도 않은, 하지 말라는 짓은 ‘이제 그만 하라’고만 강요하고 있듯이 말이다.

마치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러나 재벌개혁은 간 데 없고, 고통전담으로 빼앗길대로 빼앗겨버린 노동자의 모습과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 강제철거를 당해 쫓겨나야만 하는 서너살박이 어린 아이들의 더 이상 단란할 수만은 없는 가정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는 시대가 바로 지금 90년대말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언제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해 길바닥을 전전할지도 모를 아버지의 뒷모습과 예비 노동자에서 이젠 예비 실업자로 전락해버린 나의 미래 또한 빤히 보인다.

그럼에도 모여드는 학생들을 다그치고, 최루탄을 쏘아대고, 연행해가고, 집회장을 봉쇄해버림으로서 학생들의 말문을 막아버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은 2년전 그때나 지금이나 강한 의문을 들게 한다.

학생들이 거리에서 외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것인가?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던 나였지만, 또다시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난 아버지를 붙들고 마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대체 왜 학생들은 아직도 하지 말라는 그런 일들을 해야만 하는지. 이 사회를 ,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차마 저어버리지 못하고...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