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자 시절 난 우연히 고 이한열군의 사진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사진속의 이한열군은 실신한 채 한 친구에 의해서 부축받고 있었다.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알 수 없는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었던 나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왔다.

왜 그런 알 수 없는 눈으로 사진 밖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왜그리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87년 민주화 투쟁 당시 군부독재에 항거하며 싸웠던 고 이한열군이었다.

우연히 접한 이 한 장의 사진은 학보사 생활을 하는 동안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부끄러움으로··· 이후 난 학보사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많은 사건을 접했다.

연대사태, 노동법 날치기 통과, 총파업 등등. 이 때마다 학생들은 세상에 반기를 들며 일어섰다.

하지만 난 항상 주저했다.

물론 노동법 날치기 통과의 부당성과 총파업의 정당성은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언제나 머리에서만 맴돌 뿐 "가슴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선배를 따라나간 집회에서든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여하게 된 집회에서든 난 구호조차 제대로 외칠 수 없었다.

구호를 외치는 것 자체가 너무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이런 이유로 나에겐 언제나 "분노하는" 동기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이러한 생각은 늘 나를 괴롭혔다.

그러면서도 난 끊임없이 내 행동을 정당화했다.

난 최소한 사회모순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라고 자위하며. 하지만 이런 나의 비겁한(?) 행동이 민중들의 생존권을 무참히 짓밟는 정부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남성들을, 점점 조여오는 학교 앞 상업문화를 방관하게 만든 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해주길 바란 건 아닐까. "술이 아무리 독해도 먹지 않으면 취하지 않는다" 라는 속담처럼 실제로 행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결과도 기대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저 말로만 모든 걸 바꾸려 하진 않았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한 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바뀌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주저할 수 없다.

그 어떠한 것도 우리가, 그리고 내가 직접 움직이지 않는 한 변하지 않기에. 이제 변명에 급급했던 나에게, 사회 문제에 방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던지고 싶다.

그대,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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