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우리반에는 소위 '날라리'라 불리우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아들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짧은 교복치마에 물들인 머리를 하고 있었고 선생님들에게도 낙인찍힌 '문제아들'이었다.

나를 포함한 반아이들은 그들을 피했으며 어쩌다 같이 앉게 되거나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모두들 그들을 외면했다.

그들은 '모범생'(?)인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학교에 있어 필요악이라는 생각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이것도 잠시. 그 아이들은 대부분 자퇴를 했고 다시는 학교에서 그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물론 나이에 맞지 않는 진한 화장을 하고 같은 부류의(?) 남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번 번 보기는 했지만, 얼마 후 그들은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며칠 전 엄마와 새로 입주할 아파트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 엄마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입주할 48평형 아파트와 18평형 아파트 사이에 커다란 담벼락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했다.

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고 엄만 잘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길 꺼려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을 잘살건 못살건, 예쁘건 못생겼건, 똑똑하건 무식하건 간에 모두 평등하다고 배워온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부당한 조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담벼락의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위치한 아파트로 입주한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의 우월감을 느끼며. 결국 나 스스로도 가난한(?) 사람들과 나를 분리시켜 버렸던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못 가진 것이 죄'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에 필연적인 것인 지도 모른다.

흔히 우리는 '성별, 인종, 종교, 그 밖에 어떠한 조건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며 가난하다는 이유로,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규범에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들과 다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누가 누구보다 가치 있다'라는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과연 어느 누가 거리의 부량아보다 대통령이 더욱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떠한 개인의 가치도 단지 그 사람의 재산만으로, 학력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동안 '날라리'들을 '문제아'로만 생각했던, 공사판에서 일하는 막노동꾼들을 부끄럽게만 생각했던 내모습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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