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안돼요, 선생님”“뭐가?”“왜 꼭 노조를 만들어야 참교육이라는 게 가능한거죠”“음...글쎄...”“그런 것들은 정부가 고민해서 정하고 선생님드은 그렇게 가르치시면 되잖아요”“그게 하기 힘드니까 그렇지”?“...”상담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여쭤본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은 나를 여전히 혼란스럽게 했다.

당시 학교에는 전교조에 대한 이야기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고 그 중에는 몇몇 아는 선생님도 포함돼 있어 아이들 사이에 한참 관심사가 됐으나 곧 잊혀졌다.

? 그리고 얼마후 단발령이 내렸다.

어릴적부터 계속 머리를 길러왔던 나에게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무엇보다도 타의에 의해 자신의 머리가 ‘잘린’다는 생각에 아이들 대부분은 정말 억울하고 분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각을 말할 기회조차 엇었다.

어쩌다 기회가 생겨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에 사실 애걸복걸에 가까운 항변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진지했던 우리의 주장은 단발령이라는 제도에 대한 ‘비판’아닌 무시하고 호통쳐야하는 한낱 ‘불평’으로만 취급됐다.

우리는 단발령의 대상이었지만 그 제도로부터는 소외돼 있었따. 그것은 침울한 우리들과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외면하는 선생님, 이들 모두 위에 존재했다.

결국 예정된 날 아침 우리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다들 머리를 자르고 와 교문을 통과했다.

? 이후 난?‘단정하고 학생다운 단발머리를 하고’교과서를 달달 외우며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3년간 교실에 갇혀 또 다시 참고서와 문제집을 외웠다.

그리고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다.

? 그러나 그동안 교실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풀렸던 곳은 강의실이 아닌 한 학생이 싸늘히 죽어간 길위에서였다.

그곳에서 내가 느낀 것은 사회모순에 대한 분노보다 바로?‘내가’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따. 이러한 생각은 내가 속해 있는 사회, 내가 대상이 되는 제도에 대해 내가 불평 아닌 비판을 할 수 있따는,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느낄 수 없는 후련함을 느끼게 해줬다.

? 대개 사회는 개개인에 의해 구성·운영된다고 하지만 유리벽처럼 보이지는 않는, 이미 짜여진 체제를 따라 개개인들은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벽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리고‘내가’ 이미 주어진 그 벽을 깨거나 넘거나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한채. ? 물론 내가 외운 교과서에는 사회운영원리, 사회제도 등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지만‘나’는 그것들로부터 소외돼 있었다.

제도아래서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교육을 12년이나 받았기 때문일 것이리라. ? 이젠 선생님의 말씀과 단발령에 대한 분(?)이 이해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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