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태극기가 화면 가득 일렁인다.

몇 명의 사람들이 그 밑을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다시뛰자 코리아’ 글씨체도 내용처럼 묵직하다.

뿐만 아니라 요즘 TV에서는 어떤 채널을 틀어도 금빛 물결을 볼 수 있다.

금반지·금비녀·금두꺼비… 금을 모아 나라를 살리자는 현대판 국채보상운동 덕분이다.

지난해 11월21일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IMF에 구제금융을 정식 요청했다.

바야흐로 IMF시대가 열린 것이다.

총외채 1천5백69억달러를 온국민이 나눠 분담한다고 해도 1인당 4백88만원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고통을 분담하자는 캠페인은 당연하게까지 보인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산품애용·과소비 추방·전등 한등끄기 등 현재의 금모으기와 같이 국가적인 위기가 발생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수많은 캠페인을 접해왔다.

국민감정에 호소해 급한불부터 끄고보자는 식의 캠페인은 60년대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캠페인을 보면 우리는 문제의 본질이나 상황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을 찾기도 전에 일제 볼펜 한 자루와 큰맘먹고 산 외투 한벌, 실수로 켜둔 화장실 전등앞에 죄인이 돼야 했다.

지금도 대대적인 시대적 흐름(?)앞에 아직 금반지를 주택은행에 맡기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 된다.

무수한 캠페인들은 아직도 모라토리엄의 위기가 현실이니 책임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일단 금을 모으고 아껴 위기를 모면해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고통분담이라든가 금모으기 운동에 앞서 어쩌다 우리가 금을 모으며 고통을 분담하게 됐는지만이라고 알았으면 한다.

총외채 중 1천5백49억달러를 차지하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외채 앞에 20억달러에 불과한 공공부문의 외채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종합금융회사(종금사), 재벌 그리고 제대로된 관리감독도 없이 24개의 투자금융회사를 외환업무가 가능한 종금사로 전환해준 재경원과 정부. 적반하장도 유분수가 있다는데 이쯤되고 보면 은근히 국민 너희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캠페인도 그 수준이 보통은 아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모두 뒷전인 현재, 고통분담이나 금모으기 등 상황타개에 급급한 공익광고성 캠페인. 이는 급할때면 언제나 운운하던 절약·과소비 추방 캠페인처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국민을 속이는 또하나의 이데올로기일 수 밖에 없다.

이제 고통분담을 논하기 전에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으며 일을 벌인 사람이 누구인지를 명확히하고 철저히 그들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똑같은 수법에 속아주기에는 40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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